노 대통령은 취임 후 21차례의 해외순방을 통해 47개국을 방문했다. 작년만 해도 ‘5대양 6대주 16개국’을 돌며 31차례의 정상회의를 가졌다. 대통령의전비서관이 “수행기자들도 녹초가 됐다”고 할 만큼 강행군이었다. 그런 일정도 거뜬히 소화해 낸 대통령이어서 이번 일이 단순한 신체적 피로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민감한 현안이 많은 한중, 한중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니까 진이 빠지지 않았겠느냐”고 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북핵 해법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는 말도 보탰다. 그러나 힘들기로는 회담 상대방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베 총리와의 북핵 신경전도 작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가 더 심했다고 한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서 노 대통령의 ‘개헌 피로감’이 정상외교 무대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자외교와 정상외교에 나선 대통령이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국내정치 문제로 속을 끓이다 공식 일정까지 포기했다면 불행한 일이다.
외교는 내치(內治)의 연장이다. 안정된 정치, 튼튼한 경제, 국가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갖춰졌을 때 대통령도 신이 나고, 할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말했듯이 외교는 ‘얼음 밭에서 죽순 따는’ 식의 기적이 아니라 부단한 적공(積功) 위에서 가능한 것이고, 적공의 첫걸음은 내치에 있다. 노 대통령이 이런 점을 새겨 순리의 정치로 돌아선다면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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