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9월 이후로 늦춰야” 81% (63명)
“경선 반영비율 바꿔야” 69% (54명)
한나라당 의원 10명 가운데 7명꼴로 국민과 당원의 여론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도록 현재의 대선 후보 경선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8명꼴로 현재 6월로 예정돼 있는 대선 후보 경선 시기를 여권 후보가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9월 이후로 늦춰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가 한나라당 전체 의원 127명 중 연락이 닿은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의원들은 경선 방식과 시기를 모두 조정하자는 의견이 많았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 중에는 현 당헌 및 당규대로 경선을 치르자는 견해가 우세했다.
한나라당은 다음 달 초 경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경선 준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선거인단 수-비율 조정해야”
현 경선 규정은 ‘대의원 20%, 당원 30%, 일반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를 반영해 대선 180일 전(6월 22일)까지 대선 후보를 뽑도록 하고 있다.
경선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답한 의원 54명 중 50명은 “현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선거인단의 수와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고경화 의원은 “틀은 유지하면서 당원의 의견과 여론의 분위기를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경선 방식은 합의 절차를 거쳐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맹형규 의원도 “큰 틀은 유지하면서 책임당원 수 확대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선 방식을 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고진화 김영숙 박계동 배일도 의원 등 4명이었다.
현 경선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4명(30.8%)이었다. 이런 견해를 보인 의원들은 “현 경선 방식은 50여 차례에 걸쳐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특정 대선 주자의 유·불리에 따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박종근 의원은 “경선 방식을 꼭 바꿔야 한다면 당원의 뜻을 다시 모아야 한다. 특정 세력의 뜻대로 바꿔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당 후보보다 하루라도 늦게”
경선 시기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0.7%인 63명이 대선 180일 전까지로 정해진 경선 시기를 여권의 대선 후보가 가시화할 9월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답했다.
당 정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몇 차례 실패한 것은 상대방보다 먼저 후보를 내놔 흠집 내기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라며 “후보 선출은 여당 후보가 결정되는 시기나 그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안택수 의원도 “여당보다 하루라도 늦게 후보를 선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윤석 의원은 “당내 경선 시기를 미루자는 의견이 다수라면 경선준비위원회가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당헌·당규에 규정된 대로 6월에 해야 한다는 의견은 19.3%(15명)에 그쳤다.
서상기 의원과 박세환 의원은 “경선 시기는 이미 정해 놓은 것인 만큼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충환 의원도 “경선 시기는 현행 규정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했다.
○대선 주자들의 미묘한 견해차
경선과 관련해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각자의 이해에 따라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이 전 시장은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캠프에서는 “경선 방식을 바꾸고 시기도 미루자”는 의견이 많다.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압도적 1위를 하고 있지만 국회의원과 대의원 등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는 지지도가 여론조사만큼 앞서 있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당내 입지가 확고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대표는 ‘현 규정을 유지하자’는 태도다. 57차례의 회의와 공청회 등 복잡한 당내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확정한 경선 방식을 한 번도 실시해 보지 않고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따져 바꾸면 안 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주장이다.
본보의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양측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국민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려면 선거인단 비율을 바꾸고 참여 인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며 “경선 시기도 합의로 조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측근인 김무성 유정복 의원은 “당헌·당규가 정한 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이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나자 박 전 대표 측에서도 “경선 시기를 미룰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참모인 유승민 의원은 “당원의 합의에 따라 당심과 민심을 적절하게 반영한 경선의 근본 틀을 손댈 수는 없다”면서도 “경선 시기는 여당 쪽 상황을 봐가며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측은 “경선 방식과 시기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선에서 이길 후보를 뽑는 것”이라며 “현 방식에 집착하지 말고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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