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의장은 “큰 충격이다. 당에 대한 도전과 난관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통합신당파 의원들 사이에서는 2월 14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가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열린다면 전대에서 ‘당 해체’와 통합신당 추진을 결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조기 탈당을 결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비대위 직후 브리핑에서 “정당 구성원 대다수의 의견을 모아서 만든 (개정)안이기 때문에 현실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헌 개정이 쉽지 않다. 당헌을 개정하려면 중앙위원 68명 중 3분의 2인 46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현재 외유 중인 중앙위원이 10여 명이고, 당 사수파 중앙위원도 최소 10여 명이다. 어렵게 중앙위를 열어 당헌 개정안을 처리했다고 해도, 2월 14일까지 전대 대의원을 다시 선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이 때문에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중앙위 소집 대신 구당헌의 기간당원제에 따라 대의원 구성을 다시 하자는 의견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기간당원에는 당 사수파가 많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앙위를 소집해 당헌 개정 절차를 밟는 게 낫다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
비대위는 중앙위 소집을 위한 실무 검토를 거쳐 20일 회의를 열어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어렵게 절차가 보정(補正)돼도 문제는 남는다. 당 지도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가 증폭되면서 전대에서 ‘통합신당’을 결의할 동력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통합신당파인 정장선 의원은 “전대를 3월 전에 하긴 해야 하는데 순조롭게 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마저 “전대가 제대로 될까”라며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탈당 러시 벌어지나=통합신당파의 탈당 러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 당직자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결정이 탈당사태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상한 길’을 찾아야 한다며 탈당을 시사해온 천정배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전대 꼴이 우습게 됐다”며 “비상한 길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터놓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통합신당파인 주승용 의원은 “이제는 절을 떠나야지”라고 말했고, 강창일 의원은 “일부는 당을 나가서 신당 분위기를 만들고, 일부는 당에 남아서 통합신당 추진 지도부를 선출하는 양면 구도를 만들 때가 됐다”고 말했다.
통합신당파 5개 의원모임 간사 9명도 이날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당 문제를 법원에 넘겨 엉망을 만든 이들과 같이해야 되는지 고민이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을 예고하고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인 염동연 의원도 조만간 탈당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가 대선을 포기해 그나마 탈당의 구심점이 없어진 것이 난제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당내 지분을 갖고 있는 김 의장이나, 정동영 전 의장이 더는 주저할 게 아니라 탈당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의장과 정 전 의장이 결심하지 않는 한 탈당사태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당 사수파 의원들은 이날 신기남 의원 사무실에 모여 신당파의 탈당 움직임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화영 의원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탈당한다면 적절치도 않고 당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고 말했다.
▽지도부 책임론=이날 비대위에서 김 의장은 “책임지고 자진사퇴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 책임지고 그만두겠다는 것처럼 무책임한 게 없다”는 다른 비대위원들의 설득에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차피 전대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도부 교체는 의미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지도부 책임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가처분 신청을 냈던 당 사수파 기간당원들은 이날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을 지고 비대위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당내 다수 통합신당파도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마찬가지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에 대비한 비대위 차원의 대처가 전혀 없었다는 것. 한 의원은 “김 의장이 이날 법원 결정이 나오기 직전에 전대 준비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추인했다. 한마디로 법원의 결정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비대위는 그동안 가처분 문제에 대해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비대위의 권위는 완전히 상실됐다”고 말했다.
이날 법원은 지난해 6월 국회의원 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당헌 개정 권한을 비대위에 위임했을 당시 표결 기록이 조작됐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 회의록과 녹취록을 제대로 맞춰보지도 않고 법원에 제출한 무신경도 지도부의 책임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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