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않는 북한앞에 푸짐한 ‘상차림’

  • 입력 2007년 2월 21일 02시 58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2007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20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룸에서 ‘2007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정부는 최근 6자회담의 타결로 북한 핵의 폐기를 위한 2005년 ‘9·19공동성명’이 이행 단계에 진입했다고 판단하고 현재의 정전(停戰)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유보해 온 개성공단 1단계 잔여 용지 53만 평의 분양을 3월 중 실시할 방침이다. 정부는 당초 개성공단 1단계 잔여 용지를 세 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분양할 방침이었으나 작년 7월 이후 분양이 중단된 것을 감안해 이를 한꺼번에 분양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07년 업무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올해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되어야 한다”며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이행하는 것은 물론 평화체제의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9·19공동성명에 ‘별도의 한반도 평화포럼’을 구성하기로 돼 있는 점을 상기시킨 뒤 “관련국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네 나라가 될지, 더 폭넓게 될지는 모르지만 (포럼 구성에 관한) 제반 사항은 남북 간에 주도적으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또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북한의 경협인프라 구축을 위한 중장기 추진 전략을 수립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원할 북한의 경협 인프라에는 남포항 현대화와 철도 개·보수 등 물류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인도적 대북 지원은 가급적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구상은 북핵 문제의 해결을 지나치게 낙관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13일 타결된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05년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에 관한 합의도 아직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장관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한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원론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현실적으론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의 도움이 없이는 평화체제 논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인도적 지원은 가급적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선 북한에 대한 중요한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남북대화 재개에 전격 합의한 배경엔 남측의 쌀과 비료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15일 로마에서 가진 이탈리아 동포와의 간담회에서 “북한 사람들은 예측하기 어렵고 조건이 많고 까다롭다”고 전제한 뒤 “지난번 미사일 사건, 핵 실험 때 지원을 중단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의도하든 안 했든 (우리가) 지렛대를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통일부가 북핵 문제의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장밋빛으로만 볼 게 아니라 더욱 냉철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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