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 사흘째인 1일 남북한은 쌀 차관 제공 시기와 양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
남북은 이날 평양 고려호텔에서 수석대표가 만났으나 쌀 차관 제공 문제를 다룰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개최 시기 등에 관한 이견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북측, “쌀 빨리, 많이 달라”=북측은 3월 중 평양에서 경추위를 열고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지원을 협의할 적십자회담도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개최하자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남측은 4월에 경추위를 개최하려 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의 2·13합의(북핵 폐기에 관한 2005년 9·19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조치에 관한 합의)를 이행하는지 지켜보고 쌀 차관 제공의 양과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4월 13일까지 이행하기로 돼 있는 핵시설 폐쇄(shutdown)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검증 수용 조치를 취하기 전에 쌀 차관 제공을 결정할 경우 ‘성급한 퍼주기’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반면 북측은 3월 경추위에서 쌀 차관 제공에 합의하더라도 선적과 운송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4월 13일 이후 쌀이 북측 지역에 전달된다는 점을 들어 경추위 개최를 서두르고 있다.
또 북측은 쌀 차관 제공량을 예년 수준인 연간 50만 t보다 더 많이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미사일 발사로 쌀 50만 t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로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는 것.
그러나 남측은 이날 회담에서 쌀 차관 제공 시기와 양을 경추위에서 논의하자는 자세를 고수했다.
▽남측, “이산가족 상봉 빨리하자”=남측은 경추위 개최에 앞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 재개와 이산가족 화상 상봉을 즉각 추진하고 4월 중 대면 상봉을 하자고 요구했다. 남측은 또 지난해 북측 군부의 반대로 무산된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의 시험운행을 다시 추진 중이다.
한편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남측 대표단은 이날 오후 북한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 이날 면담은 남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가 김 상임위원장을 예방한 것은 2000년 박재규, 2002년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2·13합의를 준수함으로써 북핵 폐기에 이르는 초기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김 상임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수령의 유훈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평양=공동취재단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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