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 내 배급 체계는 붕괴됐으며 외부에서 지원된 식량은 주로 노동당, 군, 보위부 등 핵심 권력층에만 분배되고 있다고 북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지원 식량 분배 체계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간부라도 배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노동자라도 쌀 배급을 풍족하게 받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은 북한에서 경제난이 가속화되는 최근 수년 사이 사회주의적 평등 분배 질서가 붕괴되면서 생긴 것이다. 그 자리에 권력층의 독식이 판치는 ‘신배급 질서’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머릿수에 따른 기존 식량 공급 체계=북한의 기존 사회주의 식량 공급 체계는 철저히 식량 공급 ‘급수’와 식구 수에 따른 분배였다. 식량 공급 급수란 중노동자 800g, 학생 500g, 노약자 300g 등의 기준을 정해 놓고 이 기준에 따라 배급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급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제로 공급되는 식량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북한의 배급 방식은 크게 협동농장 농민들에 대한 분배, 근로자에 속하는 국영농장 농민과 기타 주민들에 대한 배급, 군인들에 대한 배급 등 세 가지로 나뉜다.
협동농장은 식량과 현금을 한 해 농사가 끝난 뒤 일괄 지급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받는다는 것이 다를 뿐 연간 분배 식량 총량은 보름에 한 번씩 배급받는 국영농장 근로자와 다름이 없었다.
협동농장은 매일 분조장(10∼20명의 작업단위)이 평가하는 ‘노력 공수(작업 실적)’를 1년간 합쳐 현금을 차등 분배한다. 다만 돈의 구매력이 낮아 농민들이 현금 분배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일은 거의 없는 상태. 또 식량 분배도 작업 실적에 의한 인센티브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자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도시 및 국영농장 근로자, 당 간부는 근로일수에 따라 배급을 받는다. 노동에 불참한 일수만큼 배급을 줄인다. 군은 아무런 기준 없이 머릿수에 따라 식량이 지급됐다.
▽권력에 따른 신배급 질서=머릿수에 따른 배급체계는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북한 양정총국은 각 협동농장으로부터 할당한 양곡을 징수해 근로자 및 군에 공급하고 공급량에 비해 징수량이 모자라면 외국에서 식량을 들여왔다.
그러나 징수하는 양곡은 해마다 줄었다. 대기근을 경험한 농민들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국가 식량을 빼돌려 비축하거나 개인 텃밭을 가꾸는 데 힘을 쏟은 것이 원인 중 하나다. 김정일 부자 우상화나 군수 공업에 쓸 외화도 부족한 북한 당국은 일반 주민들에게 분배할 식량을 수입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근로 의욕을 고취할 목적으로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한 이후에는 일한 만큼 식량 분배를 차등 지급하는 협동농장도 일부 생겨났다.
하지만 식량의 절대량이 모자라자 양정총국은 군과 군수공업에 우선 공급했다. 물론 군인들도 기준인 850g에 크게 미달하는 양밖에 공급받지 못해 영양실조로 인해 환자가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군과 군수공업부문, 노동당 외화벌이 부서, 국가 전략산업 등에서는 저마다 소속 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양정총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외부 지원 식량도 이런 권력기관을 중심으로 나눠 먹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관례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외부 지원 식량이 들어오면 군부 등 힘 있는 기관들은 할당받은 식량을 항구에서 곧바로 실어간다.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군용 차량은 민간 차량 번호판을 임시로 달고 항구를 출입한다. 군부가 먼저 챙기고 나면 2순위 기관들이 힘을 겨뤄 가져간다.
가장 힘없는 곳은 지방기관이다. 지방 도, 시, 군의 노동당 간부들도 소속 기관이 위로부터 지원식량 할당을 못 받으면 배급을 받지 못한다.
지난달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에 평양 시민들에게는 한 달 치 배급을 주었지만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은 전혀 받지 못한 곳이 많다.
반면 지방 광산 노동자들은 가족까지 전량 쌀 배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이는 해당 광산에서 캐낸 광물이 수출돼 외화를 버는 품목이어서 해당 업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노동당 외화벌이 기관 소속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지원되는 식량이 이처럼 기관들 간의 힘겨루기를 통해 나눠지기 때문에 북한에 지원을 할 때는 한꺼번에 줘야 일반 주민들도 소량이나마 지원 물품을 배급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조금씩 나누어 주면 일부 권력기관이 들어오는 양을 독차지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이 들어오면 일정량은 지방에도 할당해 주기 때문이다.
▽배급이 빈부를 결정하지는 않아=배급을 받으면 식량 살 돈은 아끼지만 직장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장사는 할 수 없게 된다. 북한 근로자 평균 월급이 쌀 3kg밖에 살 수 없는 보잘것없는 액수이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는 장사를 해야 생필품을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로자가 배급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생활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다 1년 내내 자신의 급수에 맞는 공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군대나 일부 기관뿐이고 나머지는 외부 지원이 들어오는 시기나 국가 식량 사정에 따라 양이 달라진다. 부족한 만큼은 스스로 장마당에서 구입해야 한다.
장사를 하면 배급받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대개 북한 주민들은 배급 잘 주는 직장보다는 장사를 더 선호한다. 최악은 배급을 1년에 몇 달만 받으면서 직장에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주목되는 점은 외부의 지원이 많아질수록 배급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직장 출근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더 강화된다는 것. 그만큼 장사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오히려 더 떨어지는 역설이 통하는 게 북한의 현주소다.
반면 간부들은 뇌물을 받기 때문에 배급과는 상관없이 쌀과 생필품은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 물론 배급도 받고 뇌물도 받는 간부가 더 많다.
인도적인 목적으로 북한에 지원되는 쌀이 독특하고 복잡한 배분 체계를 거치면서 주민들에게 반드시 혜택을 주는 것만도 아닌 묘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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