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측은 당 경선준비기구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에서 경선 시기와 방법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 ‘당 분열’ 우려까지 낳았지만 두 대선주자의 중재안 수용으로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다만 ‘9월, 40만 명’을 마지막 양보선으로 생각하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당 지도부는 중재안이 각 대선주자 진영의 견해를 반영한 ‘최대공약수’인 만큼 이를 토대로 경선 일정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논의 과정 및 합의 배경=한나라당은 지난달 초 당 내외 인사 15명으로 경선준비위원회를 구성해 경선 시기와 방법을 논의하면서 활동 시한을 연장했지만 사실상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이 전 시장 측은 ‘7월, 20만 명’에서 물러서지 않았고, 박 전 대표 측도 “명분 없이 ‘6월, 4만 명’의 규정을 바꾸면 안 된다”고 맞섰다.
당 안팎에서 “지도부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강 대표가 15일부터 대선주자들과 접촉해 ‘빅2’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당의 화합’을 위해 중재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8월 21일’(대선 120일 전)은 기존 ‘6월 22일’보다 두 달가량 늦춰지는 것으로 ‘7월 경선’을 주장해 온 이 전 시장으로서는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이 전 시장은 춘천 강원도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선 룰을 둘러싸고 대선주자 간 갈등으로 국민과 당원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며 “고민 끝에 대선주자들이 각자의 요구사항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경선에서의 유·불리보다는 당의 본선 승리를 위해 결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규모를 늘리는 데 반대해 온 박 전 대표가 ‘20만 명’ 안을 수용한 것도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울산시당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원들이 그것(중재안)에 동의하고 찬성하면 (경선 규정을) 바꿀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인 한선교 의원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박 전 대표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대선 승리와 당의 화합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어렵게 당의 제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유리할까=이 전 시장 측은 중재안대로 경선 룰이 바뀌더라도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여론 지지율에서 박 전 대표를 20%포인트 안팎 앞서고 있어 선거인단 규모가 확대되면 ‘민심’이 더 정확히 반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 측도 경선 시기가 늦춰져 ‘여론 반전’을 꾀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특히 8월 전 범여권의 후보가 가시화하면 이 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도 좁혀질 것으로 박 전 대표 측은 기대하고 있다.
손 전 지사가 경선에 불참할 경우 그의 지지표가 ‘빅2’ 가운데 누구에게로 옮아갈 것인지, 또 손 전 지사가 탈당하지 않고 당내에 남아 특정 주자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도 관심사다.
한나라당은 19일 최고위원회에서 경선 규정 개정을 의결한 뒤 이달 하순 전국위원회(1000여 명 이내)를 열어 경선 관련 당헌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200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을 감안하면 올해는 7월 20일경 전국 순회 경선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하산할까 하차할까
손학규 “국민 위한 꽃망울 터뜨리는 역할 하고 싶다”▼
“이제는 손 전 지사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8월 21일, 20만 명’ 경선 룰을 사실상 수용한 16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손 전 지사는 15일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부인과 함께 설악산으로 떠났다.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심사숙고 중이다. 손 전 지사는 16일 현재 백담사 인근 봉정암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강원 양양군 낙산사를 찾은 손 전 지사와 3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낙산사 주지 정념 스님은 “손 전 지사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손 전 지사는 이르면 17일 백담사를 찾는 강재섭 대표와 만나 자신의 결심을 밝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박종희 비서실장은 “강 대표가 생각을 정리 중인 손 전 지사를 무리하게 찾아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8일 서울에 올라온 뒤 만나도 충분할 것이다”고 말했다.
▽3가지 선택 가능성=손 전 지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3가지.
첫 번째는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경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당이 내놓은 ‘8월, 20만 명’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한 상황에서 경선에 불참하면 당 분열의 책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선에 참여했다가 떨어지면 어떤 경우에도 이번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점이 손 전 지사가 결심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손 전 지사가 경선에 불참하고 당에 남아 다음 기회를 모색하기로 마음을 정할 수도 있다.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정해지더라도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나거나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를 견디지 못해 낙마하게 되면 손 전 지사에게 다시 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가 탈당한 뒤 신당 창당이나 여권행을 통한 중도세력 규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경우 명분 없는 탈당이라는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에 남아 경선 불참 가능성 커=손 전 지사 주변에서는 경선에 불참하더라도 일단 당에 남아서 기회를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견해가 많다. 대선주자들의 현재 지지율이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경우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명분 없는 탈당에 대한 부담도 크기 때문.
이해득실에 대한 셈법은 각자 다르지만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손 전 지사와 함께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며 경선 룰에 합의한 것도 손 전 지사가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16일 오후 손 전 지사 측근들은 당에 남되, 경선에 불참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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