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전 지사의 탈당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양강(兩强) 대결로 진행돼 온 한나라당 내 경선 구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경선의 흥행성을 떨어뜨리고 한나라당 지지층 가운데 일부 중도 세력의 이탈을 부추길 가능성은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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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전 지사의 탈당이 빅2 중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선 예상이 엇갈린다. 일단 손 전 지사 지지층이 이 전 시장의 지지층과 겹쳐 있었다는 분석에 따라 이 전 시장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선두주자인 이 전 시장을 타깃으로 삼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의 잠재적 영향력은 대선 가도에서 반(反)한나라당 세력의 중심축으로 설 수 있을지에 달렸다는 게 당내 일반적인 분석.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명분이 없기 때문에 결국 정치인 손학규는 포말이 돼 덧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 동반 탈당 얼마나 될까
평소 손 전 지사와 뜻을 같이했던 인사들의 동반 탈당 여부도 관심사다. 손 전 지사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박종희 전 의원은 19일 “고심 중”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한나라당)와 어머니(손 전 지사)가 이혼했으니 누구를 따라가야 하느냐”는 말로 고민스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손 전 지사를 돕던 한나라당 소속 당원협의회 위원장과 도의원 등도 당황하고 있다.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동안 공들여 온 지역 기반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 경선준비위원회에서 손 전 지사의 대리인이었던 정문헌 의원 측은 “손 전 지사와 얘기를 나누고 생각을 정리한 뒤에 의견을 표명하겠다”며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오늘 오전에 손 전 지사에게서 전화가 와 ‘생각이 같을 테니 나를 도와서 많은 일을 해 달라’는 제안이 있었다”면서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고 나와 당원들과의 약속도 있는 만큼 거절했다”고 말했다. 역시 비슷한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남경필 의원은 “지금은 동반 탈당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도 당장 범여권 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보다는 ‘제3지대’에서 그림을 그릴 구상을 하는 듯하다. 연대 대상은 시민사회 세력, 이른바 ‘새로운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이런 손 전 지사의 행보는 역설적으로 범여권의 통합작업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손 전 지사가 엮어 내려고 하는 세력은 범여권의 통합 대상과 겹치기 때문이다.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천정배 의원 등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손 전 지사와 지지층이 겹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결단 여부도 주목된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이쪽에 올 필요도 없고 이쪽에서 당길 필요도 없다. 지역을 뛰어넘는 대선구도의 실험을 성공시키면 손 전 지사는 산다. 혼자 등대가 되고 횃불이 돼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당시의 ‘후보 단일화 학습효과’를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손 전 지사가 지금 범여권과 손을 잡으면 불쏘시개만 될 뿐이다. 그러나 제3지대에 있으면서 중도통합을 이뤄 낼 경우 대선에 임박해 (반한나라당) 후보단일화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4] “주몽이 되겠다”는 뜻은
손 전 지사는 탈당 기자회견에서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가 서로 얽힌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경영할 창조적인 주도세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부여를 떠난 주몽에 자신을 빗대 탈당 이유를 설명했다. 새로운 가치를 원했던 주몽이 낡은 가치에 매달려 있던 부여에서 다른 왕자들과의 패권 경합을 포기하고 떠난 것처럼 자신도 탈당을 선택했다는 주장이다. 주몽이 역경을 헤치고 고구려를 세운 것처럼 자신도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프랑스에 머물다 1월 초 귀국한 소설가 황석영 씨가 “이명박, 박근혜 씨가 존재하는 한 한나라당의 개혁은 불가능하다”며 손 전 지사에게 강력하게 탈당 권유를 한 게 손 전 지사의 결단에 한몫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 전 지사는 황 씨와 1970년대 노동운동을 같이 한 이후 30년 넘게 깊은 친분을 이어 왔다.
[5] ‘전진코리아’ 손 전 지사 거점 될까
손 전 지사가 15일 창립기념식에서 축사를 했던 386 출신 중도개혁세력 모임인 ‘전진코리아’가 일단 그의 활동에 중요한 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손 전 지사가 이날 “전진코리아가 새로운 정치세력 형성의 한 바탕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나, 전진코리아가 보도자료를 내고 손 전 지사의 탈당을 환영한 것은 이런 관측에 힘을 더해 준다.
이와 함께 손 전 지사 측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일부 의원과도 대화의 통로를 열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손 전 지사 측 핵심 관계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탈당했겠느냐”고 말했다.
[6] ‘대한민국 드림팀’ 어떻게 만들까
그는 또 “대한민국 드림팀을 만드는 데 밀알이 되겠다”며 범여권에서 영입을 시도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런 분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 내 꿈이고 희망”이라고 했다.
손 전 지사는 1월 전남 목포를 방문했을 때도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정 전 총장의 개방적 태도와 진 전 장관의 첨단, 손학규의 통합 정치의 리더십이 모이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 사람 모두 경기고 출신이다.
정 전 총장과 진 전 장관은 일단 손 전 지사의 결단과 동참 요구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예비후보로서 손 전 지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지지도를 기록한 적이 없다. 본보의 조사에서도 5.8%(1월 30일), 6.2%(2월 27일)였고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5.0%(2월 19일), 5.9%(3월 5일)를 기록했다.
그러나 1월 16일 고건 전 국무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손 전 지사가 범여권의 대선후보로 나설 경우를 전제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여권 예상 주자 중 1위를 차지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범여권 후보로 나설 경우를 가정한 조사에서 강세를 보여 온 손 전 지사의 지지도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결국 여권과 표를 갈라야 하는 제3 후보로 굳어지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현재 5∼6%의 손 전 지사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경우 손 전 지사가 바라는 대로 통합의 중심에 서기는커녕 대선을 앞두고 여권에서조차 거리를 두려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홀로서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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