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시작 전에 “가벼운, 가볍지 않은 얘기를 한 말씀 드리지요”라고 운을 뗀 뒤 “선거를 앞두고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다. 후보자가 되기 위해 당을 쪼개고 만들고 탈당하고 입당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에서 흔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칙을 파괴하고 반칙하는 사람은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정치인 자격이 없다”며 “너도나도 진보와 개혁, 새로운 정치를 얘기하지만 원칙을 지킬 줄 모르면 그 정치는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보따리장수같이 정치를 해서야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손 전 지사를 향한 노 대통령의 직격탄은 손 전 지사를 범여권 대선후보로 띄우려는 범여권 일각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으려 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손 전 지사 영입은) 정치적 상상력 치고는 하책(下策)이고, 정치 현실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손학규 때리기’를 통해 열린우리당 내 추가 탈당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손 전 지사가 전날 탈당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를 ‘무능한 좌파’로 규정한 것도 노 대통령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노 대통령의 손 전 지사 비판은 지난해 12월 고건 전 국무총리 공격 효과를 염두에 둔 듯도 하다. 당시 노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두드리면 매우 섭섭하고 분하다”고 직격탄을 날린 뒤 이듬해 1월 고 전 총리는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의 인기가 없다고 해도 25% 안팎의 지지층이 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당을 만든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말하는 무능한 진보의 대표가 노 대통령이고, 노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의 극복 대상이다. 정치평론은 그만하고 민생 걱정을 하라”고 맞받아쳤다.
손 전 지사 측은 노 대통령의 공격이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 전 총리 지지층은 노 대통령의 지지층과 일부 겹쳤지만 손 전 지사의 지지층은 전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에게 실망한 세력, 반(反)한나라당 세력이 우리의 주된 지지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는 “지지율이 10%대라고 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의 힘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되게는 못 만들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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