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노 대통령의 손 전 지사 비판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대선주자들이 부당한 공격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공격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손 전 지사가 탈당 회견에서 현 정부를 ‘무능한 좌파’로 비판하긴 했지만 노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비판한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의 구술을 토대로 정리=노 대통령은 20일 손 전 지사가 자신을 ‘무능한 진보의 대표’라고 반박하자 이날 직접 손 전 지사를 비판하는 글까지 쓰려 했었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내부 건의가 있었는지 청와대 ‘정무팀’ 명의로 ‘청와대 브리핑’에 올리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이 글은 노 대통령의 구술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탈당을 명분과 성공 여부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그(손 전 지사)의 탈당이 한나라당 내부의 경선구도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대권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것이라면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흔드는 것이며, 정치를 과거로 돌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인제 의원과 김민석 전 의원의 탈당 사례를 거론하며 “선거를 앞두고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경우 명분과 실리를 모두 놓치고 정치인으로서의 지도력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몰락하기 십상”이라며 손 전 지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뒤 “대통령이 손 전 지사의 뜻을 오해한 것인지, 아닌지 두고 볼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는 “내 말의 진정성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면서 판단해주기 바란다”며 “대통령께서도 진정성을 갖고 나의 진정성을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는 ‘노무현 정치’를 복원하려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선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손학규 때리기’는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 논의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견제구의 성격이 짙다. 손 전 지사의 행보가 부각될 경우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 논의는 구심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비판이 ‘고도의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 정보위원장인 김정훈 의원은 “손 전 지사의 탈당이 노 대통령 및 범여권과 무관하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탈당에 대한 비난 여론을 상쇄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노심’의 향방=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은 최근 고건 전 국무총리의 낙마 사례 등으로 볼 때 여전히 막강하다. 노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범여권 주자로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영남 주자인 김혁규 의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한 재선 의원은 “노 대통령의 관심은 퇴임 이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선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앞으로 20% 안팎의 골수 지지층과 열린우리당 내 친노(親盧)그룹을 적절히 활용해 물밑에서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라며 “5, 6월경이면 물밑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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