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앞으로 대한민국이 살자면 친미(親美)도 하고 친북(親北)도 해야 한다”며 “북한을 우리와 원수로 만들어 놓고 그 우환을 언제까지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 방문한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한국 시간 26일 새벽) 리야드 알 파이잘리아 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세상에 대한민국에 친북정권이 어디 있을 수 있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베트남 파병, 중동 특수에 이어) 세 번째 특수는 북쪽에 있다. 북한이 개발되면 한국 경제가 또 한 번의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시장에 힘차게 진출하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그는 ‘대북 퍼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을 거론하면서 “구박 세게 받았다. 북한에 독하게 안 한다고, 별로 퍼준 것도 없는데”라며 “그 정도의 (대북) 지원은 꼭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데 어떻게 퍼준다고 하고 북한하고 친한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월 이탈리아 공식 방문 당시 동포간담회에서 “북한이 달라는 대로 주고 문제를 해결해도 남는 장사”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북 지원에 대해선 그동안 엄청난 지원을 해 왔지만 결과는 별게 없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 대북 지원의 효과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이보다 많은 대규모 경제지원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북 지원이 결실을 보려면 여러 조건이 해결돼야 하는 만큼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특히 핵 문제와 북-미 관계 및 남북 관계 개선이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1998년 이후 현물 지원을 포함한 대북 지원액은 정부가 지원한 1조7005억 원과 민간 지원 5998억 원으로 총 2조3003억 원(약 24억5000만 달러). 이는 2005년 북한 예산을 북한의 공식 환율(1달러=150원)로 환산한 25억9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난 8년간 적지 않은 금액이 지원됐지만 그 혜택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갔는지 정권에 돌아갔는지는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개혁 개방 수준이나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는 큰 진척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6자회담 전망에 대해 “이번에 잘될 거라는 제 말이 맞으면 어깨에 힘을 좀 주겠다. 그동안 받았던 구박이 너무 분해서요”라며 회담이 잘 풀려 나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의 자세를 최대한 수용할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데 무게를 두고 6자회담 전망을 밝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또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이 자금 회수와 비핵화 조치에 따른 에너지 경제 인도적 지원을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을 보인 데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지원받는 문제를 논의하면서 불쌍하게 생각될 정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떤 지원을 해 달라는 요구 없이 ‘뭘 줄 수 있는지 먼저 제시하면 생각해 보겠다’며 저자세로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과 미국의 태도가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회담 전망을 보장할 정도로 확실한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회담이 잘되도록 힘을 받쳐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느냐. 노 대통령 특유의 ‘낙관주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리야드=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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