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부인해 왔다.
동아일보 자매 시사주간지 ‘주간동아’는 4월 3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 비선라인의 기획자를 자처한 권오홍(47) 씨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평양, 베이징을 오가며 기록한 비망록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이 비망록에 따르면 안 씨는 지난해 10월 이호남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베이징에서 만나 “특사 교환과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공식라인을 살려서 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씨는 또 비망록에서 지난해 12월 방북한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이 노 대통령의 뜻이라며 북측에 △12월 말이나 (2007년) 1월 초에 특사를 받고 이후 한 달 이내에 정상회담을 하자 △장소는 개성도 좋고 금강산도 좋다 △무엇을 토의하고 결정해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전했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씨의 접촉=권 씨에 따르면 남북 접촉은 지난해 9월 북한이 먼저 제의했다. 북측의 이호남 참사는 ‘노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아래 남북관계 현안을 의제화해 토의해 보자고 했으며, 노 대통령의 의중을 알고 있는 안 씨를 상대로 지목했다는 것. 권 씨는 북한이 10월 9일 핵실험을 강행한 뒤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이 자신에게 “안희정에게 빨리 진행하라고 연락하겠다. 좀 급하잖아요”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 씨는 이화영 의원과 함께 베이징에서 이 참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안 씨는 “특사를 파견하는 문제, 정상회담을 하는 문제, 이걸 의논하러 왔다. 이거 지금 다했으면 좋겠고 방법은 공식라인을 살려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북측은 ‘비선 접촉’을 주장했다.
이날 만남은 별다른 성과 없이 1시간이 채 안 돼 끝이 났고 이 참사는 11월 중순경 특사와 정상회담을 심도 있게 협의할 ‘확정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선을 통한 논의를 고집하는 북측에 부담을 느낀 안 씨가 확답을 주지 않아 2차 만남은 무산됐다는 것.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과 정상회담 추진=이 과정에서 이 참사는 권 씨에게 안 씨의 평양 방문을 전격 제안했고, 안 씨는 이해찬 전 총리가 특사로 평양에 들어가는 방안이 어떻겠느냐며 역제안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안 씨의 평양 방문 고사로 체면이 깎였으니 성의를 보여 달라며 평양 ‘입장료’로 50만 달러를 요구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대북 불법송금을 수사했던 정부로서는 현금을 주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현물 지원 의향을 표명했다. 결국 11월 26일 베이징을 방문한 이화영 의원은 북측에 1만 마리를 키울 수 있는 규모의 돼지농장을 지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권 씨는 1월 17일 베를린에서의 북-미 양자회동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풀리고 6자회담 ‘2·13합의’로 남북관계 복원의 기미를 보이면서 자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3월 7일 이 전 총리 등 방북단이 평양을 찾았다. 이 전 총리는 새로운 대남총책으로 떠오른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새로운 라인을 형성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문제까지 거론했다. 이 전 총리는 5월을 전후한 시점에 다시 방북하는 것을 약속받았다.
▽당사자들의 해명=‘주간동아’의 보도에 대해 안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측에서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만나본 것 뿐”이라며 “정상회담이나 특사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안 씨는 “당시 만남에서도 나는 ‘왜 보자고 했나요’라고 말했고 이호남은 ‘뭘 도와 드릴까요’라는 식으로 말해 대화가 겉돌았다”며 “북쪽 사람들을 만나 보니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사람들의 의욕이 많이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씨를 대신해 이 전 총리의 방북을 추진한 이화영 의원은 중국과 일본을 방문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 의원 측은 “기사는 봤다. 할 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 측도 “기사를 읽어봤는데, 그런 스토리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화영 의원이 알겠지. 총리에게는 아직 (기사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오홍은 누구
지방대 출신으로 198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특수사업부에서 몽골,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 공산권 미수교국을 상대로 ‘북방교역’을 하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에 투신한 대북 경제통. 공개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지만 만만치 않은 대북 정보력으로 민감한 정보를 정관계에 종종 제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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