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가족 화상상봉…반세기 만에 불러본 언니

  • 입력 2007년 3월 27일 13시 22분


"언니…맞구나, 맞아…언니!"

27일 제5차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 행사가 시작되고 스크린이 켜지자마자 터져 나온 말이다.

정삼옥(65·여) 씨는 이날 백발이 성성한 북녘 맏언니 정선옥(75) 씨를 보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삼옥 씨는 동생 기호(57), 올케 김순자(65), 조카 민수자(33) 씨와 함께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 마련된 상봉실에 앉았다. 북측에서는 언니 선옥 씨와 조카 정태영(48)·선영(42) 씨가 나왔다.

언니 선옥 씨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잘 모르겠구나"라고 말하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삼옥 씨는 언니의 이런 모습을 보다가 "(언니) 건강이 안 좋아 이 동생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에 북녘 조카 태영 씨는 "어머니가 평소 건강이 좋았는데 지난해 8·15 때 상봉하기로 했다가 북남 (이산가족) 상봉이 (연기되자) 갑자기 쇠약해지셨다"며 "어머니가 정신적인 타격을 받은 것 같다"고 전했다.

태영 씨는 "(건강이) 호전되다가 엊그제 다시 상봉한다고 하니 흥분하셔서 말을 잘 못하신다"면서도 "평소 건강하시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며 남녘 이모를 위로했다.

남북으로 떨어진 가족은 이어 먼저 눈을 감은 선옥·삼옥 자매의 부모님의 제사일부터 시작해 각자 가족관계와 이름, 직업, 주소 등을 물어보며 일일이 기록했다. 준비해온 가족사진을 화면에 가까이 갖다대자 모두 유심히 바라보며 반가워했다.

선옥·삼옥 자매의 가족 중에는 유난히 영화, 미술, 음악 등 예능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선옥 씨는 조선옷(한복) 전문가로 유명하고 맏아들은 영화기술자, 태영 씨는 체코에서 유학한 영화연출가라고 소개했다. 태영 씨의 남녘 삼촌 은호 씨는 화가로 활약했으며 사촌동생인 민수자 씨는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태영 씨는 "예술인 가족이구만. 핏줄이 서로 닮았다"고 즐거워하면서 "오랜만에 만나니 알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기호 씨도 조카의 말에 "누나(선옥 씨)가 어릴 적 노래를 참 잘했다고 들었다"며 "그래서 그런지 나도 노래를 잘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반세기 넘게 헤어져 있던 가족은 잊고 지냈던 친지 소식을 비롯해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주어진 두 시간을 꼬박 채웠다.

상봉 내내 눈물을 흘리며 화면을 응시하던 선옥 씨는 "평생 소원을 다 풀었다"고 조용히 되뇌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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