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386 실세들과 북측 인사들의 접촉 경위와 의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대북 비밀접촉 사실이 본보 자매지인 ‘주간동아’를 통해 알려진 뒤 사흘째 침묵을 지켜온 청와대가 28일 사실관계를 밝히고 나서면서 ‘신(新)북풍’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사건의 관련자인 이호철 대통령국정상황실장,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씨,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의 진술을 토대로 대북 비밀 접촉의 전말을 재구성한다.
▽북측, 안희정을 보고 싶다=안 씨는 28일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부터 북쪽에서 먼저 꼭 보자는 요청이 있었다. 공적인 대북 루트가 막힌 상태에서 노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할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안 씨는 그동안 자신의 대북 접촉설이 나왔을 때 “내겐 그런 인맥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안 씨에 따르면 북측의 접촉 요청을 거부하다가 북한 전문기자인 N 씨가 친구인 K(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 씨를 통해 접촉을 타진해 와 먼저 지난해 9월 N 씨와 K 씨를 중국 베이징(北京)에 보내 이호남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나게 했고, 북한의 핵실험(10월 9일) 이후 직접 만나게 됐다는 것.
이 실장에 따르면 N 씨는 북한 핵실험 후 청와대에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있으며 특사를 원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고, 이 실장은 이를 노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그 채널이 신뢰성이 있는 건지, 북한의 생각이 뭔지 확인해 보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 당시는 핵실험 후 공식 채널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여서 비공식적으로라도 북측의 의사를 타진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노 대통령, 만나봐라=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이 실장은 안 씨와 이 의원을 만났다. 이때가 10월 15일경이다. 이 실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실제로 특사를 요구할 경우 실무적으로 누가 가는 것이 좋은지를 논의했다. 대통령 생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가 거론됐다”고 했다. 이때부터 이미 이 전 총리의 특사 파견 문제까지 검토했던 것이다.
안 씨는 이 의원과 함께 베이징으로 날아가 20일 이호남 참사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주간동아를 통해 대북접촉 비망록을 공개한 권오홍(47) 씨가 배석했다. 대북교역 사업을 하는 권 씨는 이호남 씨와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안 씨의 주장에 따르면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왜 나를 보자고 한 거냐. 정상회담 하자는 거냐. 공식적으로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 다음은 대화가 잘 안됐다”고 했다. 이 의원도 “이 참사에게서 대통령 특사나 남북정상회담 얘기를 들은 바도 없고 논의한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애초 정상회담까지 염두에 두고 북측 인사를 만난 것은 분명하다.
안 씨는 “(정상회담) 의지만 확인하고 (뒤로) 빠지고, 본격적인 추진은 책임 있는 사람들, 이 전 총리,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등이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정상회담) 제안 자체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 뒤 ‘확정회담’을 거쳐 (정상회담을) 하자는 연락이 와서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너무 성급해 보였다”고 말했다.
▽이화영 의원의 오버?=이후 안 씨는 비선 라인에서 빠졌다는 게 관련자들의 얘기다. 안 씨는 “나더러 평양으로 들어와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거기까지 나설 만한 위치가 아니라서 거부한 것이다”고 했다.
이 실장은 “북한이 10월 31일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해 다시 유화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 의원에게 북한과의 접촉을 정리하라고 했다”면서 “이후 이 의원이 계속해서 북한과 접촉한 것은 이 의원 개인적으로 조금 더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추진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북측과의 접촉을 이어가다 이 참사와 권 씨가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이 전 총리의 방북을 성사시킨 것이며, 이 전 총리는 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북 접촉 결과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 노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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