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재섭 대표님의 ‘당직자 경선 중립’발언으로 경선중립 문제가 새삼스럽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정치에 있어 중립이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은 매 순간마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을 넘게 이명박 시장이나 박근혜 대표와 함께 부대끼며 그분들의 인물됨과 능력, 리더십을 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간 보고 겪은 것을 종합하여 어떤 후보가 국민들에게 가장 어필할 것인지를 판단, 선택하여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바로 읽고 그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판단하고 선택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장(대선)에서 소비자(국민)가 가장 선호할 제품(후보)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여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경선 중립은 회사에서 만들어 준 제품이라면 아무런 확신 없이 소비자들에게 팔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세일즈맨이나 할 일입니다. CEO이고 정치지도자라고 한다면 정확한 시장조사에 따라 소비자에게 환영받을 제품만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아마추어리즘과 차별되는 전문성, 장기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경제 마인드와 강력한 추진력,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남북한 화해무드 속에서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이 누군가를 바로 읽고 선택하여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인지를 적극 홍보하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설득하여야 합니다. 대선에서 우리 한나라당과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염원을 받들어 정권교체의 과업을 반드시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경선 중립은 국가적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한미 FTA문제와 같은 민감한 현안 문제에 있어 정치인으로서의 판단 없이 결정 되는대로 따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정치지도자라 한다면 국가적 이익을 고려하여 소신을 갖고 찬성과 반대를 분명히 하여 국민적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좌고우면하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직무유기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중립이라는 장막과 실력자의 등 뒤에 숨어 소신도 없이 ‘무임승차’를 노리는 것은 수권정당의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처세가 이렇지 않았을까요?
지금 당원과 국민들은 경선관리가 특정 후보에 편향적으로 흐른다거나 공천을 매개로 한 협박과 회유로 당이 분열하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습니다. 경선 중립 자체가 당원과 국민의 요구는 아닙니다.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터부시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정치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2005년 12월 저는 중앙위의장에 도전하여 패배의 쓴 잔을 마신 바 있습니다. 당시에 제가 겪었던 많은 일들은 제가 정치를 하는데 있어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저는 무명의 초선으로 혈혈단신,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중앙위의장 선거에 무작정 뛰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개혁의지에 공감은 했지만 경선이 끝난 뒤가 두려워 저와 함께 하지 못하고 결국 몇 안되는 중앙위원들과 함께 선거를 치렀습니다. 저는 그때 저를 돕기를 주저하는 분들에게 “우리 모두 지향하는 바가 같고, 다 한 식구인데 무슨 걱정이냐”며 그 분들을 설득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를 도와 일했던 많은 중앙위원님들이 선거가 끝난 후 중앙위원직에서 해촉되어 아직까지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모 분과의 경우에는 분과위원장을 비롯하여 부위원장단 전원이 물갈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저는 “앞으로 광역단체장 경선이나 대선 후보 경선 등 많은 당내 경선이 있을 텐데 이처럼 보복성 인사를 하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선례로 남을 것이며 당 화합과 결속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도부에 여러 차례 항의하고 시정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도부는 저의 이런 호소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그분들은 줄 한번 잘못 선 탓에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선거인단이 1,000여명 밖에 안되는 중앙위의장 경선의 후유증도 이러한데 앞으로 벌어질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후의 후유증과 그 치유책 마련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인이 각종 선거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도와 일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말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 지도부는 현실을 고려치 않은 기계적인 중립만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경선이 끝난 후의 후유증 대책과 화합책 마련에 골몰해야 합니다. 경선중립을 통해 경선후유증을 최소화하겠다는 소극적이고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그 누구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는 공정한 경선관리를 다시 한번 천명하고 경선이 끝난 후에 당 단합과 결속을 기할 수 있는 치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합니다. 그 방안 중의 하나로 공천문제는 경선과정에서의 호불호가 아니라 각자가 책임지고 있는 지역구의 대선 득표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당헌당규 또한 선거 중립의 의무가 있는 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로 선거관리위원과 중앙당 및 시도당 사무처 당직자, 당원이 아닌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새삼스럽게 당직자의 경선 중립을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당헌당규에도 없는 초법적인 경선중립 요구는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현 시점에서 지도부가 염려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은 당직을 이용하여 협박과 회유를 통해 줄세우기를 하는 것이지 당직자가 자신의 소신에 따라 후보를 지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경선 중립이라는 허울 속에 눈치보기를 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과 철학에 따라 유권자에게 자신이 선택한 후보를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경선이 끝난 후에는 승자는 패자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패자는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단합하여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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