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신문의 날]4년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무차별 중재신청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언론사에 반론·정정보도를 신청하기는 해야 하는데….”

올해 초 발표된 부처별 정책홍보평가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은 한 중앙 부처 공무원 A 서기관은 최고 등급을 받은 타 부처 동기보다 성과급을 3배가량 적게 받았다. 성과급도 성과급이지만 A 씨는 평가 결과가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언론과의 전쟁’에 내몰리는 공무원=역대 정부는 대부분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부처의 업무 성과를 평가해 왔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는 각 부처의 정책홍보 평가 기준에 ‘법적 대응 성과’라는 항목을 새로 만들었다.

법적 대응 성과는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 신청 건수와 소송 건수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점수에 따라 성과급이 차등 지급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사고과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어 공무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중앙 부처의 한 공무원은 “비판 보도가 나오면 언론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정정보도 혹은 반론보도를 요청하는 공문을 언론사로 보낸다”며 “대응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고 빨리 대응할수록 평가 점수도 높아지기 때문에 일단 공문부터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언론 대응을 소홀히 한 국방부, 법무부, 법제처 등은 이 기준에 따라 지난해 하위권 평가를 받았다. 부동산 문제 등으로 언론의 많은 비판을 받은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는 참여정부 4년 동안 언론중재위원회에 각각 59건, 39건의 언론 중재조정 신청을 내는 ‘실적’을 쌓아 상위권에 진입했다.

▽참여정부, DJ-YS 정부 때보다 중재 신청 급증=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이래 2007년 2월 28일까지 참여정부의 각 부처는 언론중재위에 모두 660건의 중재조정 신청을 냈다. 4년 동안 평균 2.2일에 한 번꼴로 정부가 언론을 상대로 중재조정 신청을 한 셈이다. 이는 공식적으로 언론중재위에 중재조정을 신청한 건수이고 각 언론사에 개별적으로 정정·반론보도 요구 공문을 보낸 것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전례 없이 대통령이 직접 17건의 중재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4년 동안의 ‘실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5년 전체 기간의 중재신청 118건과 비교해도 559%가 늘어난 것이다.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의 27건에 비해서는 무려 2444%가 늘어난 것이다.

언론 환경의 변화로 전체적으로 언론 중재조정 신청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4년 동안 일반시민,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이 중재조정 신청을 한 것은 2864건으로 국민의 정부 5년간 제출된 2929건보다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중재조정 신청만 압도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의 중재조정 신청 660건 가운데 조선일보(67건), 동아일보(62건), 문화일보(49건) 등이 1, 2, 3위를 차지해 중재조정 신청이 비판 언론에 집중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진영(정치학) 경희대 교수는 “대통령과 정부의 언론에 대한 정정보도 요구가 많을수록 그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통령 등 권력집단이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에 언론의 기능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전한 비판을 악의적 왜곡으로 몰아=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기관이나 정부 인사, 공무원들이 주요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또는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이긴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정정보도 청구 대상이 아닌 의견 표명이나 비평까지도 문제 삼았으나 법원은 이들의 청구를 대부분 기각했다.

현 정부 들어 정부나 공무원 등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 중 1심 판결이 난 것은 8건으로 이 중 6건이 기각됐다. 원고 측이 일부라도 승소한 것은 2건에 불과하다.

이 2건 중 하나가 노무현 대통령이 “정정보도를 이끌어 낸 경찰 공무원의 노고에 가슴이 찡하다”고 한 MBC의 ‘서울지방경찰청 연금매장 카드깡’ 보도다.

다른 하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이 총리, 거물 브로커 윤상림과 부적절한 골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일요신문사를 상대로 낸 소송으로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여졌지만 정정보도 청구는 기각됐다.

나머지 본보(4건)와 조선일보(2건)를 상대로 낸 6건의 소송에서는 원고들의 청구가 모두 기각됐다.

문화관광부가 본보 2006년 5월 19일자 A1면 ‘이참에 한 건…황당한 태클’이라는 기사와 관련해 본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지난달 28일 문화부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진실한 사실’이라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의미로, 세부적으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어도 무방하다”며 “언론기관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악의적인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또 정책기획위원회 등 대통령 소속 4개 위원회가 지난해 조선일보의 칼럼에 대해 낸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도 법원은 “의견 표명이나 비평은 정정보도 대상이 아니다”며 위원회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5년 의문사진상규명회원회 소속 위원 김모(48) 씨 등이 본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1심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기사의 ‘중요한 부분’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표현 방법이 모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김 씨 측에 패소 판결했다. 김 씨 등은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도 지난달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박천일(언론학)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가 비판 기사에 대해 조정중재 신청을 남발하거나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악의적 왜곡 보도로 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참여정부의 무리한 정책 때문에 언론의 비판 견제 기능이 중대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청와대브리핑 - 국정브리핑

‘정권 전위대’ 끊임없는 잡음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국정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그것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는 시스템에 의한 홍보를 명분으로 내세워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을, 정부는 ‘국정 브리핑’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뉴스 생산자와 전달자 역할을 동시에 맡고 나선 것.

이를 통해 노 대통령과 정부는 끊임없이 의견을 밝혀 왔지만 그때마다 크고 작은 파문이 이어졌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지난해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버블 세븐’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부동산시장의 수요와 공급 논리에 접근하지 못한 채 홍보에만 집착해 부동산값만 올려놓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로 곤경에 처하자 국정브리핑은 올 초부터 20회에 걸쳐 ‘실록 부동산정책 40년’이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했다. 이 시리즈물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글을 썼다가 여론의 반발을 샀다. 반면 ‘부동산 신호등 세우기 40년 걸렸다’, ‘저항과 좌절과 유혹의 역사’라는 기사를 통해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성공’을 자랑했다.

국정홍보처는 지난해 6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당위성을 홍보한다며 대학생 인터뷰를 허위로 만들어 국정브리핑에 게재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또 청와대브리핑은 단순한 정책 홍보를 넘어 “차라리 백지를 내라” “하이에나”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등 자극적인 표현을 써 가며 비판 언론에 대한 비난도 주저하지 않는다.

김우룡(언론학)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만 정부가 직접 매체를 운영하며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을 비호하는 것은 문제”라며 “언론 매체는 정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그 역할인데 청와대브리핑과 국정브리핑은 정권의 전위대 역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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