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조문 사절 특사로 파견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함께 러시아를 다녀온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은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여기서 ‘세 분’은 한 전 총리와 이해찬 전 총리, 김혁규 의원을 말한다.
이들은 친노(親盧) 진영에서 자천타천으로 잠재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의 행보가 공교롭게도 모두 한반도 평화 및 남북 경협 등 ‘북한’에 맞춰지고 있다.
○ 한, 이, 김의 3각 대북 행보
이들 세 명 중 가장 먼저 북한 이슈를 제기하고 나선 이는 이 전 총리다. 지난해 ‘대북 특사’로 검토되기도 했던 이 전 총리는 북핵 6자회담 2·13합의로 조성된 평화 국면에서 3월 초 북한을 방문했다.
정치권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특사다” 등의 논란을 일으키며 여론의 관심을 한데 모은 그는 이달 중순 미국을 간다.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 고위급 인사와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6월에는 러시아를 방문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도 이날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소속 남북경제교류협력추진단 단장 자격으로 김종률 김태년 이광재 이화영 의원 및 일부 경제인과 3박 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방북단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승철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 북측 인사를 만나 경제협력 방안을 협의한다. 이는 한 전 총리가 러시아에 전달한 노 대통령의 친서와도 연결된다.
한 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과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 연결의 협조를 요청하는 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지난해 여권에선 한-중-러 정상회담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한반도종단철도와 연결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하는 시나리오가 종종 거론됐다.
○ 그랜드 디자인?
이들 세 명의 행보가 서로 실질적 연관성을 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조심스럽게 친노 진영이 남북한을 아우르는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총리의 최근 ‘외교 행보’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실리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김 의원의 방북도 사전에 청와대 및 정부와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한 전 총리를 통해 푸틴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한 배경도 궁금한 대목이다. 시베리아횡단 철도 사업을 추진하려면 주러시아 한국대사관 등 공식 외교라인을 통해 할 수 있는데도 옐친 장례식 조문 특사인 한 전 총리를 통해 우리 측 의견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들 3인의 관계도 주목된다. 이 전 총리는 방북에 앞서 김 의원과 저녁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을 종합한 결과, 노 대통령이 친노 계열의 주자들에게 각각의 미션을 부여하고 대북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을 잘 아는 범여권의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은 누구를 찍어서 후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여러 후보에게 각자 자신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인 듯하다”고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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