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일 청와대브리핑에 ‘정치, 이렇게 가선 안 됩니다’란 글을 올리고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청와대는 “‘정치 지도자’에 관한 글은 지난달 23일, ‘정당’에 관한 글은 4·25 재·보궐선거 직후인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다”고 밝혔다.
▽정치 지도자, 결단과 투신이 중요하다=먼저 노 대통령은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치 지도자의 자질을 문제 삼았다. 특정인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야당은 물론 범여권 주자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는) 주위를 기웃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투신해야 한다”며 “저울과 계산기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정치는 남으면 하고 안 남으면 안 하는 ‘장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빗댄 것으로 해석됐다.
노 대통령은 또 “대통령의 낮은 인기를 바탕으로 가만히 앉아서 덕을 본 사람도 있다” “‘경제가 나쁘다’ ‘민생이 어렵다’ 이렇게만 말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들린다. 특히 “남의 재산을 빼앗아 깔고 앉아 있는 것이 있으면 돌려주라”고 말한 것은 박 전 대표의 정수장학회 문제를 거론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경선에 불리하다고 당을 뛰쳐나가는 것은 경선 회피를 위한 수단”이라는 대목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비난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열린우리당 해체 말라?=노 대통령은 4·25 재·보선 결과를 한나라당의 참패로 보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대신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후보를 낸) 경기 화성에서 졌고, 다른 지역에선 연대를 한다며 후보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열린우리당의 패배”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해체론자 책임론을 제기했다. “당부터 깨고 보자는 것은 파괴의 정치”라고도 했다.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로 압축된다. “정치에서 후보보다 중요한 게 정당”이라는 주장은 대선이 ‘51 대 49’의 세력전인 만큼 특정 주자를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결국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유지해 대선구도를 주도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30%대에 올라선 지지율도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는 요인이다.
▽정치권의 반발=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편 가르기’ 등 파행적 국정 운영으로 국민의 불신과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킨 장본인이 이제 와서 정치판에 훈수를 두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면서 대선 정국을 조정해 레임덕을 막고, 떡고물이 행여 떨어질지 모르는 유리한 위치에 앞서 가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범여권 진영은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해체파 비난에 볼멘소리를 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대통령이 대통합신당 추진 작업이 성공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한 얘기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되면 역풍이 우려된다”고 곤혹스러워했다. 통합신당모임 양형일 대변인은 “국민의 심판이 끝난 열린우리당을 지키는 것보다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