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朴 회동]다시 타오른 경선룰 불씨…한때 분위기 험악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이명박 전 서울시장(오른쪽)이 4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왼쪽), 강재섭 대표(가운데), 김형오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서울시장(오른쪽)이 4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왼쪽), 강재섭 대표(가운데), 김형오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모처럼 웃는 얼굴로 만났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도 이들이 대표최고위원실로 들어서자 “두 분께서 이곳까지 함께 들어오신 것은 처음이다. 당사가 모처럼 환하게 밝아졌다”며 반겼다.

하지만 두 대선주자는 비공개 회동에서 ‘경선 룰’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격돌했다. 당내에선 “두 대선주자 간에 경선 룰 문제가 원만히 합의되지 않으면 이번 회동은 정치적 쇼로 그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선룰 못 바꿔” 이명박-박근혜 또 충돌

○ 겉으로만 웃은 두 대선주자

비공개로 회담이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박 전 대표가 경선 룰 문제를 꺼냈다.

이주영 수석정조위원장의 당 쇄신안 설명이 끝난 뒤 강 대표가 “누가 먼저 말씀하시겠느냐”고 묻자 박 전 대표는 곧장 “이 전 시장께서 당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씀하셔서 끝난 줄로 알았다. 그런데 자꾸 경선 룰을 거론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졌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나서려는 사람은 정해진 룰과 원칙에 따라서 최선을 다해야지 자꾸 바꾸려고 하면 그건 사당(私黨)이지 공당(公黨)이 아니다”며 “이 자리에서 결정하자”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공격적 태도는 이 전 시장 측의 요구에 당 지도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박 전 대표의 한선교 대변인은 회동 후 “유기준 당 대변인이 모든 사항을 두 분께서 당에 일임하셨다고 발표했지만 일임한 게 아니라 강 대표가 일임을 요청한 것”이라며 “경선 룰에 관한 한 정당한 절차를 거쳐 기존에 합의한 사항에서 변경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이 전 시장은 “열린우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도 하는데 (한나라당도)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경선에서 5 대 5 정도의 민심 반영은 돼야지 나중에 당의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회동을 마친 뒤 “강 대표가 중심이 돼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회의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이른 시일 내 경선 룰을 정하기로 했다”고만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와 맞대응하는 것처럼 비치면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이 전 시장 캠프의 설명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저녁 열린 뉴라이트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2008 뉴라이트 한국보고서 출판기념회’에서도 “후보가 유불리에 따라 자꾸 룰을 바꿔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그게 ‘나’를 되게 해 달라는 거지 뭐냐”면서 “나도 불만이 있는 것을 바꿔 달라고 하면 바꿔 줄 것이냐”고 말했다.

○ 긴박했던 빅2 캠프 분위기

박 전 대표가 회동에서 예상치 못한 ‘경선 룰 변경 절대 수용 불가’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캠프 차원에서 미리 계획된 전략은 아니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강 대표가 이 전 시장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4자회동에서 못을 박아 둬야 한다는 교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며 “박 전 대표가 경선 룰 문제를 거론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이 장고 끝에 강 대표의 당 쇄신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암묵적 거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이 있었는데 이것이 박 전 대표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강 대표가 3일 밤 이 전 시장 측 캠프 좌장인 이재오 최고위원과 비밀리에 만난 사실이 확인되자 박 전 대표 캠프에서는 “경선 룰에 대해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반면 이날 회동에서 예상 외의 ‘카운터펀치’를 맞은 이 전 시장 캠프는 당황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시장은 “원래 오늘은 경선 룰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캠프는 “이 전 시장도 물러서지 않고 민심과 당심 5 대 5의 실질적 반영을 주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캠프는 이후 이 전 시장과 연락이 계속 되지 않아 어떤 논평도 내놓을 수 없었다. 한 참모는 “대응책을 논의하려 했으나 이 전 시장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시장은 이재오 최고위원과 일부 측근 의원이 모여 있는 장소에 들러 회동 분위기를 설명했고, 최근 해외 출장 시 취재차 동행했던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하며 회동 분위기에 대해 설명했다.

이 전 시장은 “(회동에서) 저쪽은 100%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니까 대학 총장 하던 분도 ‘나도 해 보겠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5 대 5도 안 되고 국민 참여 비율이 적으면 어떤 좋은 사람도 한나라당에 오지 못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 측 관계자는 “당 화합 차원에서 박 전 대표 측이 도발해도 감정적 대응을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시험대에 선 강 대표

이처럼 경선 룰 문제를 놓고 빅2가 정면충돌함에 따라 강 대표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박 전 대표의 이날 태도는 ‘경선 룰을 수정할 경우 판이 깨질 수도 있다’는 공개 선언에 가까울 정도의 강한 메시지였기 때문.

그래서 이 문제가 강 대표의 지도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 대표는 현행 경선 룰의 틀을 유지하면서 이 전 시장 측이 요구하는 여론조사의 반영비율을 최대한 높이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는 대의원, 당원, 국민의 투표율을 평균해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적용하는 현행 방식 대신 △상대적으로 참여율이 높은 대의원 투표율만으로 계산하거나 △대의원과 당원 투표율만 평균해 적용하거나 △4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무응답자를 제외한 각자의 득표수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강 대표는 다음 주까지 경선 룰을 확정하고 조만간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선관리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형오 원내대표는 “강 대표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여론조사 반영 방식도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걸 해결 못하면 결국 지도부 해체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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