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분사태 확산이냐 봉합이냐 중대기로

  • 입력 2007년 5월 9일 11시 57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의 룰 문제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강재섭 대표가 9일 양측의 입장을 절충한 중재안을 전격 제시함으로써 4·25 재보선 이후 표면화된 내분사태가 중대기로를 맞고 있다.

강 대표 중재안에 대한 양쪽 캠프의 수용 여부에 따라 당이 화합과 분열의 양 극단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강 대표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면 당은 재보선 참패 이후 계속된 분열과 혼돈상에서 벗어나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양쪽 또는 어느 한쪽이 거부할 경우 지도부 총사퇴론이 재연되면서 당 전체가 극심한 혼돈의 소용돌이로 빨려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만약 중재안이 거부될 경우 이명박, 박근혜 진영이 쪼개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당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중재안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지도부가 와해되고, 그 후속조치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또는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구성 과정에서 양 측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열의 길로 치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 대표 중재안의 핵심은 한마디로 선거인단을 늘리고 국민투표율 최저선을 보장해 주는 방안으로 집약된다.

'8월-20만명'인 당초 합의안의 선거인단 규모를 23만1000여명 수준으로 소폭 확대하고 당원·대의원·일반국민 투표율 가운데 일반국민 투표율이 현저하게 낮을 경우 유효투표수 계산시 그 최저선을 60~70%(당원·대의원 합산 투표율의 3분의 2) 가량 보장해 주며, 투표소를 지구당별로 설치하는 방안 등 크게 3가지다.

이에 대해 양 캠프는 긴급 대책회의를 갖는 등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하루 앞서 나온 중재안을 면밀히 검토한 뒤 입장을 내놓겠다는 것.

박 전 대표측 이혜훈 의원은 "회의후 입장을 내놓겠다"고 말했고, 이 전 시장측 정두언 의원은 "고민 중"이라는 짤막한 반응만 보였다.

그러나 양 캠프의 내부 기류를 들여다보면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 전 시장측은 "미흡하다"면서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기류가 있는 반면, 박 전 대표측에서 다소 불만 섞인 목소리가 감지되는 분위기다.

특히 박 전 대표 측에선 중재안의 3가지 내용 중 국민투표율 최저선 보장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 반영방식과 관련, 박 전 대표측이 주장한 `유효투표수의 20%' 원칙은 깨지지 않았지만 국민투표율 하한선을 보장해 줌으로써 우회적으로 여론조사 최저선을 보장해 준게 아니냐는 것.

박 전 대표측은 그동안 대의원과 당원, 일반국민선거인단의 투표율을 미리 예상해 특정 계층의 투표율 하한선을 보장해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강 대표는 양측 캠프의 찬반 입장에 관계없이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경선 룰 중재안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계획이다.

15일쯤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중재안을 의제화한 뒤 21일 전당대회 수임기구인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마디로 '대의명분'과 '당심'을 무기로 출구없이 혼돈을 거듭해 온 경선 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

박재완 비서실장은 "양측이 중재안을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설령 반대하는 쪽이 나오더라도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강 대표도 전국위를 통한 경선 룰 확정 의사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 지분을 사실상 반분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측이 중재안에 대한 불만을 행동으로 표출할 경우 강 대표가 중재안을 밀어붙이기는 역부족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법적으로나 절차적으로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 주자 간의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어느 일방이 "이런 게임룰로는 경선을 못하겠다"고 경선 불참을 전격 선언할 경우, 당이 둘로 쪼개지는 사태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다.

특히 향후 해법을 놓고 최고지도부 내에서조차 시각차를 노출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경선 룰 중재안 처리를 위한 전국위를 개최하기도 전에 지도부가 총사퇴론에 직면해 와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김형오 원내대표는 그동안 강 대표가 중재에 실패할 경우 최고지도부는 해체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펴 왔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중재안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당내 중립지대에 남아있는 일부 강경파 인사들의 입장도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4·25 재보선 참패 이후 줄곧 지도부 해체 및 비대위 구성을 주장해 온 홍준표 의원은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선거인단 확대는 맞지만 전국 동시투표제나 국민투표율 하한선 보장은 원칙에 맞지 않다"면서 "특히 사실상 여론조사의 하한선을 보장하는 식으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헌법상 보통선거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당 혁신위원장으로서 현행 '경선 룰'을 확정한 홍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 대표 중재안의 문제점을 지적할 예정이다.

소장파 의원들의 수요모임 대표인 남경필 의원은 "중재안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양대 주자의 수용 여부가 중요한 것"이라면서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강 대표 뜻에 따르던가 아니면 현 지도부를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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