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 속 충돌, 뺑소니 가능성
해경은 골든로즈호가 중국 다롄(大連) 항에서 충남 당진항으로 향하던 중 100m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진성호와 충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진성호가 골든로즈호의 선체 옆 부분을 강하게 충돌했고, 여기에 구멍이 뚫렸을 경우 철제코일 5900t의 무거운 짐을 싣고 있던 골든로즈호는 순식간에 바다로 침몰했을 것으로 해경은 추정하고 있다.
사고 시간은 12일 오전 4시 5분. 해상에 짙은 안개가 끼어 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국 선원들은 구명조끼도 입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해양 전문가들은 진성호 선원들이 구조 활동을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것은 사고의 가해자였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종의 ‘뺑소니’라는 것.
해양경찰청 수색구조과 관계자는 “선박끼리의 해상 사고는 육상에서의 자동차 교통사고와 같아 사고 발생 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이 상식”이라며 “중국 선박이 구조 활동을 벌이지 않은 채 사고 해역을 빠져나온 것은 가해 선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골든로즈호가 침몰할 당시 조난신호자동발신장치(EPIRB)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사고 발생 이전부터 고장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 국제협약 무시, 쏟아지는 비난
해양 전문가들은 급박한 상황에서 중국 선박이 구조 활동을 벌이지 않은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김영구 전 한국해양대 법학부 교수는 “한국 선박의 EPIRB가 고장 났더라도 진성호 선원들이 구조 활동을 하고, 만약 장비나 인력이 부족하면 바로 중국 당국에 구원 요청 신호를 보냈더라면 중국 정부가 곧바로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발생 7시간이 넘어서야 중국 당국이 알았다면 중국 선박이 이 같은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진성호 선원들은 중국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에 따르면 조난신호를 수신하거나 충돌을 일으킨 선박은 조난 선원에 대한 구조의 임무를 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국제해사기구(IMO)의 솔라스(SOLAS·Safety of Life at Sea) 협약과 SAR(Search and Rescue) 협약도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IMO 가입국이어서 구조 임무를 다하지 않은 선박은 중국 국내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다.
○ 중국, 늑장 대처 의혹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사고선박 회사인 중국 산둥루펑(山東魯豊)항운유한공사가 옌타이(煙臺) 시 해사국에 사고 사실을 보고한 것은 12일 오전 11시 40분(현지 시간). 하지만 랴오닝(遼寧) 성 해사국이 상황을 파악하고 현지에 구조헬기를 띄운 것은 오후 2시 15분이다.
신고부터 구조에 나서기까지 무려 2시간 35분이 걸린 것. 신화통신은 옌타이 해사국이 중앙정부의 교통부 해사국 중국해상수색구조센터에 즉각 상황을 보고하고 곧바로 랴오닝 성 해사국에 연락해 ‘항운경고(비상령)’를 발동하고 구조에 나섰다고 보도했지만 구조가 우선인 해상사고에 늑장 대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 측이 한국 해경에 사고 사실을 즉각 알리지도 않고, 한국 해경이 뒤늦게 사고 선박 회사로부터 신고를 받고 문의한 뒤에야 이를 확인해 준 것도 국제 관례에 어긋나는 처사다.
중국해상수색구조센터는 12일과 13일 경비정 20척, 헬기 2대, 항공기 1대를 동원해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사고 해상에서 구명벌(침몰 시 자동으로 팽창되는 보트식 탈출기구) 2개, 구명환 4개, 기름띠만 발견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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