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두 대선주자가 경선 과정에서 또다시 검증과 네거티브(비방, 폭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지도력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강 대표 체제가 어떻게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도 주목된다.》
“오늘은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이 전 시장은 14일 긴급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경선 캠프 사무실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안국포럼으로 달려온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대부분의 의원은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이 전 시장이 벼랑 끝 대치를 끝내고 박 전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임을 알아챘다.
이 전 시장이 “저에게 맡겨 주세요”라고 말하자 20여 명의 의원은 박수로 환영했다.
이날 대반전은 이 전 시장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캠프의 설명이다. 이 전 시장은 회견에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다가 오늘 새벽녘에 결심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오후 일정도 예정대로 진행했다. 서울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원 교육 행사에서 이 전 시장은 “나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오후에야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박희태(캠프 선거대책위원장 내정) 의원, 이재오 최고위원 등 일부 의원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이 최고위원은 강경 대응을 주문했지만 이 전 시장은 ‘나에게 맡겨 달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오후 4시경 경선 캠프의 여의도 이전으로 텅 빈 안국포럼 사무실에 이 전 시장이 도착했다. 기자회견 문구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박형준 의원을 불러 문구를 다듬었다. 이 전 시장은 A4 용지 2장에 자필로 기자회견문을 작성했다.
이 전 시장은 오후 7시경 “당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조건 없이 수용한다…”며 기자회견문을 외운 듯 읽어 내려갔다. 그는 강 대표의 거취에 대해 “강 대표가 당 개혁을 하고 중심을 잡으며 국민 앞에서 다시 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측근 의원 20여 명과 저녁을 함께 하며 “나의 결단을 따라 줘서 고맙다. 당이 있어야 이명박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했다.
그는 “나로서는 민심을 잃으면 당심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당이 절박하니까 대승적으로 양보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결정에는 여론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한 측근 의원은 “‘이번에는 이 전 시장이 양보하는 게 더 보기가 좋다’는 여론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 시장은 각계 인사에게서 ‘양보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양보를 하면 앞으로 벌어질 박 전 대표와의 각종 힘겨루기에서 더는 명분 때문에 밀리는 일은 없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이 전 시장이 이날 “이제 진짜 전투로 가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당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5·14 대결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희태 의원은 “이 전 시장의 결단은 국민을 바라본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조항을 양보하더라도 선거인단 수를 당초 경선준비위원회 합의 때보다 3만여 명을 더 늘린 것 자체가 이득이라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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