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세대 전투기’ 공중전 판도 바꾼다

  • 입력 2007년 5월 16일 03시 00분


한국 공군의 최신예기인 F-15K. 한국은 아직 제5세대 전투기 도입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공군의 최신예기인 F-15K. 한국은 아직 제5세대 전투기 도입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44 대 0.’ 지난해 여름 미국 알래스카의 공군기지 내 모의 공중전 상황실. 고성능 컴퓨터가 연결된 대형 스크린에서 깜박이는 숫자를 바라본 미 국방부와 공군 수뇌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 공군의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22(일명 랩터)가 기존 주력 전투기인 F-15, F-16, F-18과의 가상 공중전에서 ‘백전백승’의 경이적인 성과를 거둔 것. 역사상 어떤 전투기도 보여주지 못한 가공할 전투력이었다. 사흘간에 걸쳐 진행된 가상 공중전에서 기존 전투기들은 미사일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한 채 F-22의 ‘먹잇감’이 됐다. ‘제5세대 전투기’의 선두 주자인 F-22의 최첨단 스텔스(적 레이더를 회피하는 기술) 성능 때문이었다.

일본이 최근 F-22의 대량 도입 방침을 밝힌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맞설 제5세대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이후 제5세대 전투기의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예산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미국, F-22 다음엔 무인전투기로=미국이 1991년 F-15의 후속으로 개발에 착수한 F-22는 제5세대 전투기 중 최초로 2005년 말 실전 배치됐다.

F-22는 상대의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나는 반사면적(RCS)이 작은 벌레 크기에 불과해 상대는 레이더만 봐서는 F-22의 접근을 탐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적기는 F-22가 접근해 미사일을 발사해도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F-22가 ‘유령 전투기’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F-22는 또 현존 전투기 중 유일하게 ‘슈퍼 크루징(재연소가 필요 없는 초음속 순항)’이 가능하고 최첨단 항공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미 공군은 대당 3억 달러(약 2800억 원)인 F-22를 2010년대 중반까지 300여 대 도입할 계획이다.

미 국방부는 F-22의 후속으로 보잉사와 함께 인공지능 로봇이 조종하는 차세대 스텔스 무인전투기(UCAV)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X-45’로 불리는 이 UCAV는 시험 비행과 폭탄 투하 실험을 끝냈으며 5년 내 양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F-22와 견줄 첨단 전투기 개발=중국은 2015년경 실전 배치를 목표로 J-13, J-14로 불리는 차세대 첨단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중국의 선양(瀋陽)과 청두(成都) 항공사에서 제작 중인 두 기종의 경쟁상대는 미 공군의 F-22. 괌이나 일본의 미군기지에 F-22가 실전 배치되면 유사시 중국의 주요 군사 목표물은 단시간 내 파괴될 수밖에 없다. 특히 F-22의 스텔스 성능에 위협을 느낀 중국은 러시아의 제5세대 전투기 개발계획을 참고해 두 기종에도 스텔스 설계를 적용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J-13, J-14가 실전 배치되면 중국의 기존 전투기나 러시아의 주력 기종인 SU-27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 동북아 군사력 균형을 깨뜨릴 우려가 높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베일에 싸인 SU-47=러시아의 제5세대 전투기로는 구소련 때부터 개발되어 온 SU-47과 미그 1.42가 있다.

SU-47은 기체에 특수도료를 칠하고 미사일 등을 내부에 탑재해 제한적인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며 양 날개가 앞쪽으로 휘어진 전진익으로 설계돼 탁월한 항속능력과 기동성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재정난 때문에 현재 시험기만 제작했으며 아직 양산은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제5세대 전투기 보유가 본격화될 경우 러시아도 단기간에 양산과 실전배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선택은?=한국은 차기전투기(FX) 2차 사업계획에 따라 2010년부터 2012년까지 F-15K급 전투기 20대를 도입한 뒤 제5세대 전투기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F-15K는 F-22보다 낡은 기종”이라며 “(일본이 F-22를 도입할 경우) 우리도 그에 상응한 적정한 양을 갖춰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공군의 F-15C나 일본 항공자위대의 F-15J를 능가하는 항법장비와 사거리 300km의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F-15K는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힌다. 하지만 4세대 전투기인 F-15K의 우위는 주변국들이 제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돈이다. 현 국방 예산으론 F-15K 가격의 3배에 달하는 F-22와 같은 제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F-22와 동일한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F-35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제5세대 전투기:

전투기의 세대는 2차대전 이후 1세대부터 개발 시기와 무장 능력, 스텔스 성능 적용 수준 등에 따라 바뀌어 왔다. 완벽한 스텔스 성능과 초(超)기동성, 첨단 항법장비를 갖춘 5세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으며 실전 배치된 기종은 F-22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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