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열차가 17일 경의선과 동해선을 타고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MDL)을 반세기 만에 넘었다. 경의선은 1951년 6월 이후 약 56년 만이며 동해선은 1950년 9월 이후 약 57년 만이다.
이날 열차 시험운행으로 땅길, 바닷길, 하늘길에 이어 철길이 하나로 이어진 것은 물론 향후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문산역을 출발해 경의선을 따라 북녘으로 향한 남측 열차(기관사 신장철)는 이날 낮 12시 18분 비무장지대의 정적을 깨며 군사분계선을 건넜다. 북한 금강산역을 출발해 남측으로 내려온 동해선 북측 열차(기관사 노근찬)는 낮 12시 21분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날 남북 철도 연결은 한계도 드러냈다. 일회성 군사 보장에 따른 ‘시험운행’에 불과해 정식 개통 때까지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제 철마가 다시 달릴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남측에선 이날 행사에 수천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자축 행사를 벌였지만 북측은 대표단을 경의선과 동해선에 50명씩 파견했을 뿐 이렇다 할 기념행사를 열지 않았다.
▽남북 간 현격한 분위기 차=이날 오전 11시. 민족 번영의 꽃길을 상징하는 오색의 폭죽이 하늘로 치솟는 동시에 경의선 새마을호 7435호 열차가 문산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11시 반경 열차는 수백 발의 폭죽과 대형 애드벌룬 사이로 3번의 기적을 울리며 개성역을 향해 출발했다. 관람객들과 철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1000여 명의 파주시민은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경의선 남측 대표단장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이날 문산역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서막을 열게 됐다”며 “(열차 시험운행은) 한반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종합적 물류망을 형성해 남북경제공동체 형성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는 안팎에서 ‘분열주의 세력’의 도전이 계속되고 있다며 “그럴수록 우리 겨레는 더 큰 하나가 돼 민족 공조의 궤도를 따라 달려야 하며 절대로 탈선하거나 주춤거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측 인사들이 ‘우리의 소원’을 합창할 때도 권 참사는 애써 창밖만 내다봤다.
북한 관영매체들도 열차 시험운행을 짤막하게 보도하는 데 그쳤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남 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이 17일 동서해선에서 각각 있었다. 시험운행에 앞서 북남 동서해선 철도 연결 공사 정형(경과)에 대한 보고와 연설들이 있었다”고 전했을 뿐 열차 시험운행의 의미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남측 대표단장인 이 장관이 A4 용지 4장짜리 축사를 통해 “민족의 대동맥을 잇는 역사적 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북측 김 철도상은 A4 용지 1장 분량의 축하 연설에서 “남과 북의 철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계기”라며 담담하게 평가했다.
김 철도상은 대신 열차 출발 시간인 오전 11시 반까지 남은 시간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웅담을 늘어놓는 데 할애했다.
김 주석이 1968년 ‘현지 지도’ 할 때 이용했다는 동해선 시험운행열차의 기관차 앞에 멈춘 김 철도상은 “우리 수령님(김 주석)의 통일 유훈을 관철하자는 의미를 담아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김 철도상이 이어 “수령님께서 통일 철도를 구상하시고…”라고 하자 이 장관이 “화장실이 어디냐”며 말을 끊어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지기도 했다.
경의선·동해선=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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