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임기 5년간의 일반회계 및 특별회계 예산과 각종 공기금 지출액은 무려 1000조 원이다. 기금을 빼더라도 4인 가족 1가구에 6800만 원꼴이다. 소득이 없는 국민의 의식주(衣食住) 생활에도 세금이 붙는다.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을 주무르는 정부는 납세자인 국민에게 정보를 소상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어제의 취재 제한 결정에 대해 “선의(善意)를 갖고 하는 일”이라며 “국가의 제도와 관행을 세계적인 보편 관행과 일치시켜 가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하는 행정 폭력을 ‘선의’라고 하고, 세계의 어떤 민주정부에도 유례가 없는 취재 방해 제도를 ‘관행’이라고 우기는 강심장이 역시 그답다.
5년간 1000조 쓰는 정부의 국민 눈 가리기
먹고살기 바쁜 국민이 정부의 혈세 오남용(誤濫用) 여부를 일일이 알아보러 다니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언론이 존재한다. 언론이 정부-국민 사이의 소통(疏通)과 정보 매개 역할을 하면서 권력과 정부를 감시 비판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다. 언론의 감시견(watchdog) 기능이야말로 민주주의 실현에 필수불가결하다.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돼야 민주적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 역시 정책에 대한 사전 사후 검증을 받음으로써 국정을 더 바르게 펼 수 있다. 그럼에도 노 정권은 비판 신문의 목줄을 죄기 위해 위헌(違憲)조항이 포함된 신문법을 제정하고서도 모자라 언론의 접근을 최대한 봉쇄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4개 야당과 대선주자들, 대다수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각 언론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제히 반대했는데도 정부는 막무가내였다. 노 정권의 반(反)민주성을 여실히 입증한 행태다. 이러고도 ‘국민이 대통령’이라느니 ‘참여정부’라느니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올까.
노 대통령은 5·18기념사에서 ‘민주세력이 자유와 창의가 꽃피는 사회를 성취했다’고 자랑했다. 사실 여부는 접어 두고라도 노 대통령 자신이 민주세력에 포함될 자격이나 있는가. 그가 집권 4년간 보인 것은 ‘참여와 분권’이라는 구호와 정반대인 ‘소통 부재와 배제’, 그리고 ‘독선과 오만’의 리더십이다. 기자실 통폐합 조치는 이런 반민주적 DNA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김종민 문화관광부 장관 등 국무위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이 ‘토론공화국’의 진면목이다. 이번 조치를 주모(主謀) 또는 주도(主導)한 양정철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윤승용 홍보수석비서관 등은 자신들이 이 땅의 자유민주를 욕되게 하고 있음을 깨닫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정권이 언론과 전쟁하면 공무원 더 힘들어
이번 조치로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이 더 어려워짐에 따라, 진실로 위민(爲民) 정책을 펴보려 하는 다수의 공복(公僕)들 또한 힘들게 됐다. 정부가 공론(公論)의 햇볕을 거부하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성공 가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이 부닥치고 있는 공직 기강 해이와 정부 시스템 고장도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폭압적 국정 운용 탓이 크다고 우리는 본다. 공무원들이 ‘코드에 맞으면 정의요, 안 맞으면 불의’라는 식의 정신적 강압에 시달리다 못해 겉으로는 복종하는 듯하면서 속으로는 ‘내 잇속이나 챙기자’며 딴생각을 하는 경향이 확산된 게 아닌가.
노 대통령이 또다시 언론과 전선(戰線)을 형성함으로써 지지층을 끌어 모으고 대선 국면을 주도해 보겠다는 계산을 혹시나 하고 있다면 착각으로 판명날 것이다.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세금 아껴 쓰고, 삶이 고단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일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기는커녕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헌법 위반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대통령이 ‘민주의 가면(假面)’을 쓴다고 해서 지지층이 부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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