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경유착보다 무서운 ‘法的부패’

  • 입력 2007년 5월 24일 19시 27분


“수구보수 언론이 참여정부의 역사를 거의 말아먹을 지경에 와 있다.”

대통령 측근 안희정 씨가 최근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참여정부 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인 그의 말대로라면 노무현 정부는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천한 정부다. 그 찬란한 역사를 계승할 차기 대통령 후보도 못 내고 문 닫는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그들의 私有物인가

참평포럼이 열거한 업적 중에서도 정경유착 청산과 부정부패 척결은 특히 눈부시다. 대선정국 본격화와 함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면 언론은 이런 치적 발표만 받아쓰고, 국민은 노 정부 계승자를 갈구할 것이다.

‘국제기준에 맞는 선진 시스템’이라고 하니 토를 달아 보는 거지만 세계은행은 사적 이익을 위해 공직을 남용하는 것을 좁은 의미의 부패로, 공공정책의 사유화를 넓은 의미의 부패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법과 규제를 이용해 뇌물 받고 공적자원을 낭비하는 게 전통적 부패라면, 그들만의 사익을 위해 법과 규제 명령 정책을 새로 만들어 내는 건 ‘법적 부패(legal corruption)’요 ‘국가 점령(State capture)’이다.

참평포럼은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놓으니 민주주의는 커지고 국정 효율도 높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자신들이 점령한 사유물로 아는 제왕적 사고가 아니라면 그런 취재 봉쇄 칙령은 나올 수 없다. 민주국가의 정부는 선의(善意) 아닌 정책 결과로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국정을 위임받은 정부가 국민이 낸 혈세를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발표한 것만 믿으라”라는 건 제왕이 아니곤 못 할 일이다.

정부 발표가 맞는지 틀리는지 알자고 나서야 하는 게 언론이다. 2005년 세계은행의 ‘법적 부패’ 보고서는 정치적 책임성을 알아보는 설문으로 ‘신문이 검열이나 보복당할 두려움 없이 기사를 낼 수 있는가’를 들었다. 언론 틀어막으려고 위헌 조항이 담긴 신문법을 만들고도 모자라 기이한 규제까지 짜낸 것이야말로 책임성 회피이고, 법적 부패다.

선거가 없어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공산국가들도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를 도입한다. 그 요체가 국영기업 민영화라고 경제학자 맨커 올슨은 지적했다. ‘눈먼 돈’으로 운영되는 국영기업이 부패와 비효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참평포럼은 ‘과거 정부는 선진국의 민영화 움직임에 동참해 왔다’면서도 문제가 많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민영화 중단 역시 국정 효율을 위한 고뇌의 영단인 듯 생색을 냈다.

공기업 감사들의 ‘이구아수 사건’을 보면 왜 민영화를 안 하는지 알 만하다. 대통령과의 연(緣)과 충성심이 깊은 이들에게 공직을 쌈짓돈처럼 나눠주려면 공기업 민영화란 턱도 없는 일이다. 세계적 추세인 작은 정부를 혐오하는 이유도 투명하게 알겠다. 지난달 발탁된 국가보훈처장이 대통령 후원자의 사돈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챙겨 주려면 공조직을 무한정 늘려도 모자랄 판이다.

그래서 대통령 덕에 민주주의와 국정 효율이 꽃피었다는 참평포럼 평가와 달리 작년에 나온 세계은행의 정부지표(Governance Indicator)에선 6개 부문 중 책임성, 효율성, 규제의 질, 법치의 4부문 2005년 점수가 2002년보다 떨어졌다. 부패통제 부문은 2002년보다 높되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에 한참 뒤졌다.

참평포럼을 ‘노무현黨’으로

그래도 참여정부가 옳고, 잘했다는 국민이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판은 책임정치, 책임정당을 완성하는 일”이라는 안 위원장 말은 일리가 있다. 참여정부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는 이제 와서 강간당한 것처럼 우기는 사람들보다 훨씬 당당하다.

참여정부의 역사가 그토록 자랑스럽다면 참평포럼은 참평당이든, 노무현당이든 정당으로 나와 책임정치를 완수하기 바란다. 그것이 참여정부를 찍고 싶은 국민에게 책임지는 길이다. 유권자가 표로 찍든, 아니면 도끼로 찍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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