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 “사생결단하라”=김 전 대통령은 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로 찾아온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만나 “단일 정당이나 연합체를 만들지 않으면 대선은 하나마나”라며 범여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고 수차례 말하며 “누구 한 사람이 나타나 정국을 리드하지 못한다면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배석했던 김현미 의원이 27일 전했다. 또 “한나라당 후보들은 전국을 돌며 국민을 만나는데 이쪽은 옹기종기 모여 내부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다”고도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상대가 없이 혼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은 8·15를 넘기면 어려워진다”며 남북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날 언급에 대해 열린우리당 관계자들도 “점점 더 (훈수가) 분명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측은 이날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뜻을 따르고 정책 대결을 하라는 원론적 조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러 차례 ‘정치 불개입’을 천명했던 김 전 대통령이 범여권 통합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위기의식을 느껴 대선에 적극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 전 대통령은 28일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 29일 박상천 민주당 대표를 만난다. 이번 주에 이해찬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할 예정. ▽노 대통령의 잦은 지방 나들이=노 대통령도 이미 대선 정국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열린우리당 탈당과 해체를 선언한 정동영, 김근태 전 의장을 겨냥해 ‘정치를 그만두라”고 직격탄을 날린 데 이어 부동산 세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종합부동산세를 깎아 준다면 1% 대통령’이라고 공세를 폈다.
최근 들어서는 주말을 맞아 지방 나들이가 잦은 편이다. 25일 해군 이지스함 진수식 참석차 울산을 방문했다가 행사 후 한 호텔에서 부산상고 동문 30여 명과 회포를 푼 뒤 26일 귀경했다. 동문과의 만남에는 부산상고 동기인 차의환 대통령혁신관리수석비서관이 동석했다.
18일엔 5·18기념식 참석 후 전남 담양군의 온천 리조트에서 1박한 뒤 다음 날 지지자들과 함께 광주 무등산을 등반했다. 이에 앞서 1주일 전에는 경남 진해시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귀경 길에 고향 봉하마을에 들러 지인들을 만나고 사저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노 대통령의 잦은 대선 개입 발언과 지방행에 대해 열린우리당 관계자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정치 관련 발언과 지방 행사를 통한 일반인 접촉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퇴임을 앞두고 그동안 미뤄 놓았던 사적인 약속들을 챙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심(金心)’ vs ‘노심(盧心)’=전현직 대통령의 훈수는 양측의 갈등 양상으로도 번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옛 지지층을 복원해야 한다는 견해지만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구도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 남은 앙금도 여전하다. 김 전 대통령은 26일 정 전 의장과 만나 “민주당 공천으로 당선됐는데 당을 깨고 나가고,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면서 대북송금 특검으로 고생한 사람들을 감옥에 넣으면 지지자들이 어땠겠느냐. 지지자들이 안 받쳐 주니까 열린우리당이 이렇게 된 것 아니냐”며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범여권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막바지에 이르면 김심과 노심이 손을 잡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하다.
▽“시대 흐름에 역행”=한나라당은 김 전 대통령의 최근 정치 개입 발언에 대해 “국민 염원을 무시하는 훈수정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27일 김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장을 만나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한 것에 대해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국민 염원을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기 바란다”며 “권력 다툼에 개입하지 않는 사심 없는 국가 원로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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