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이번 회담은 17일 경의선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과 경공업-지하자원을 연계한 남북 경제협력의 본격적 추진 등 긍정적인 기류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남측이 북측의 6자회담 ‘2·13합의’ 미이행을 이유로 대북 식량차관 제공을 유보했기 때문에 북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 당국자는 “북측과 합의한 대로 쌀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안 준다’ ‘못 준다’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상황에 따라 단지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요 의제와 전망=정부는 △군사적 신뢰 구축 등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업 △철도 부분 개통과 개성공단 통행 및 통관 문제 등 경협 활성화 방안을 주요 의제로 제안할 계획이다.
정부는 특히 철도 부분 개통의 성사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일단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통근 및 개성공단 물자 수송을 실시한 뒤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 통근 및 개성 관광객 운송 단계를 거쳐 서울∼평양 등 남북 간 정기열차 운행으로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북측은 4월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합의한 쌀 40만 t 차관을 조속히 제공하라는 주장을 먼저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재조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남북 상호 간 참관지 제한 철폐 등 이른바 ‘근본 문제’ 해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권호웅 북측 대표단장은 이날 쌀 지원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환영만찬에서 “민족 내부 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끼리 협의하고 민족 공동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해 쌀 지원 문제를 북핵문제와 연계한 남측을 겨냥했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만찬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북측은 남북회담의 개념과 가치를 민족공조에 두고 있다”며 “2·13합의(이행)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측이 남북공조를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부적으로는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상주대표부 설치 △제2차 국방장관회담 개최 △남북 국방장관 간 핫라인 개통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 연습의 상호 통보 및 참관 △우발적 무력 충돌 방지 조치 등 긴장 완화 장치 마련 등의 방안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찬사에서도 이 장관은 “이번 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북측 대표단의 이번 방문이 한반도에 평화를 여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평화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이유=그러나 북측은 장관급회담에서 군사 문제를 다루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구체적 합의가 이뤄지기보다는 개괄적으로 향후 논의의 방향만 정해도 성공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핵문제를 포함한 체제 안전보장의 문제에 관한 한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이 북한의 대전제였으며 현재도 그렇다”면서 “진지한 논의는 어려울 것이며 상부에 남측의 평화체제 논의 의지를 전달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장관급회담 북측 대표단의 인적 구성을 보아도 군사 분야와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는 어려워 보인다. 권 대표단장은 내각 책임참사이고 차석대표인 주동찬 민족경제협의회 부위원장도 경제 분야만을 다뤄 왔다.
한 정부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물꼬를 트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면 성공적이라고 보는 것이 정부 내 기류”라고 귀띔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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