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統이 뭐기에… 교민사회 위원선정 싸고 시끌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귀국 회의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위원 전체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정부의 정책 홍보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해외자문위원들은 1년에 한 번씩 고국에 와 회의에 참석한다. 사진 제공 평통
귀국 회의
지난해 10월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 위원 전체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이 정부의 정책 홍보 내용을 메모하고 있다. 해외자문위원들은 1년에 한 번씩 고국에 와 회의에 참석한다. 사진 제공 평통
《기자는 이달 중순 미국 내 한 대도시의 총영사관을 방문했다. 영사는 “교민들과의 관계 때문에…. 평통 문제 보도에 우리 지역이 거론되면 절대 안 된다”며 손을 젓다가 ‘지역 이름까지 익명으로 하겠다’고 약속하자 비로소 말문을 열었다. 그가 털어놓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해외 위원 선정을 둘러싼 청탁과 분란의 사례들은 2시간이 넘어도 얘기가 계속될 만큼 무궁무진했다. 기자가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평통 위원(또는 간부) 추천을 부탁하는 전화가 걸려와 대화가 중간 중간 끊겼다. 영사는 “추천권을 교민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 모두 넘겼고 총영사관은 관리만 한다”고 설명했지만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국서 실력자 오면 밥사고 골프접대

“우리사람 뽑아달라” 영사관 전화쇄도

▽분란의 씨앗=평통 민원을 거절했다가 곤욕을 치른 외교관은 한둘이 아니다. 현 12기 평통 위원의 추천이 이뤄지던 2005년 4월 유럽의 한 공관에 근무하던 A 영사는 지역 유지들이 제시한 명단을 본 뒤 “젊은 세대와 여성 비율을 높이라는 본국 지침 때문에 곤란한 사람들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는 그 뒤 이 유지들이 영사관 주최 행사를 보이콧하고 온갖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같은 시기 스페인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한 고위 외교관은 30일 “청와대를 통해 누구누구를 꼭 넣으라는 요청이 와서 난감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최우수 평통으로 선정된 워싱턴 지역의 경우에도 4월 말부터 한 달 넘게 영사들이 인선 문제 때문에 녹초가 됐다. 추천위원회를 지역 원로 1명, 여성 대표 1명, 차세대 대표 1명, 현직 평통 회장, 총영사 등 5명으로 구성키로 했는데 지역 원로 1명을 정하는 데도 교민단체들의 이해가 엇갈려 5번이나 후보를 바꿔야 했다.

다른 한 지역의 영사관 관계자는 “한 사람을 추천위원으로 거론하면 다른 쪽에서 ‘그런 ×들 상대 안 한다’며 반발하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워싱턴 총영사관 민원실에선 평통 위원 선정 작업에 불만을 가진 한 교민이 여직원들에게 고함을 치며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총 10년간 평통위원을 지낸 H 씨는 “2년마다 4, 5월이면 후보 희망자가 한국에 드나들며 선을 댄다”고 말했다.

전직 교민단체 회장 K 씨는 “서울에서 국회의원 같은 실력자가 오면 식사와 골프를 접대하는 한인 재력가가 많으며 브로커까지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외교관은 청와대, 국회, 국가정보원 등 한국발(發) 청탁은 최근 많이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한 고위 외교관은 “여전히 해외협의회장(전 세계에 걸쳐 22명) 같은 간부 자리는 서울의 핵심인사와 끈이 닿아야만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통일정책 조언은 뒷전=선정 과정의 분란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을 건의하고 자문에 응하는 헌법기관 위원이지만 실제로 위원 구성을 보면 그런 역량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해외 위원 현황을 보면 자영업과 서비스직종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미주 지역의 한 한인단체 간부는 “평통 위원은 한반도 정책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있거나 현지 주류 사회에 한국을 위해 발언해 줄 수 있을 정도의 네트워크를 가져야 하는데 명단을 보면 어느 지역도 그런 인물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 법무부에서 반독점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리처드 신 박사는 “실질적으로 고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관심을 갖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단순히 명예직이란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주지역의 한 한인단체 간부는 “전문직 종사자들을 추천해 보려 했지만 대부분 사양한다”며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았지만 그럴싸한 대외용 직함이 아쉬운 분들이 평통 위원 자리를 많이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사실 지금까지 외교안보 부서에서 대북정책을 수립하면서 평통의 조언이나 의견을 반영한 사례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념 물갈이 시도=참여정부는 해외 교민의 성향상 보수성향이 강한 평통 위원단의 이념적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한 전직 총영사는 “참여정부 출범 직후엔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현지 조직이 평통 지분 20자리를 요구해 보수적 교민단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평통 수석부의장 시절인 2005년 “평통 위원의 성향을 고루고루 해야 한다”며 40대 이하 30%, 여성 20%, 3선 이상 금지 등의 지침을 통해 위원들을 대폭 교체했다. 역시 재야 출신인 김상근 현 수석부의장은 아예 올해 1월 “민주 평화 통일은 진보적 가치이지 보수적 가치가 아니다”며 7월 구성할 평통위원은 절반 이상을 진보적 인사로 구성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한 바 있다.

미주 지역에 한 자리가 할당된 부의장의 경우 이미 김 부의장과 친한 A 목사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년 전 이맘때는 본국 정부에서 낙점한 후보를 놓고 한인회 회장들이 “좌파는 안 된다”며 탄원서를 내며 반발하는 등 이념 갈등이 빚어진 바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남북통일 정책의 수립 및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대통령 자문기구. 통일주체국민회의가 1980년 폐지된 뒤 다음 해 그 후신으로 발족했다. 국내직능대표와 지역대표, 해외동포 대표로 구성된 국내외 254개 지역협의회를 두고 있으며 1만7000여 명의 자문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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