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헌법학자는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체크하고, 문제가 있으면 직무 제한도 해야 한다”며 “이에 관한 법제도가 없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성을 현 정권이 드러냈다는 게 그의 견해였다. 작년에 들은 얘기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은 병적인 데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앞뒤 안 맞는 언행을 천연덕스럽게 반복하는 걸 정상으로 볼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은 격정적 연설에서 현 정부와 김대중(DJ) 정부를 “똑같이 좋은 정부”라고 묶으면서,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정권을 잡으면 좀 끔찍한 무책임한 정당”이라고 매도했다. 그가 DJ 정부의 산실인 새천년민주당을 ‘반(反)개혁 지역주의 정당’으로 규정하며 쪼개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든 건 2003년 가을이다. 2005년 여름엔 “한나라당과 극복 못할 차이가 있겠느냐”며 대연정(大聯政)을 하자고 박근혜 대표에게 스토커처럼 졸랐다. 당시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은 “(춤을 안 추겠다면 선선히 물러나는) 카바레 매너만도 못하다”고 비꼬았다.
노사모 식 생존법엔 처절美마저
2004년 5월 말 노 대통령은 연세대 학생들 앞에서 “나는 속물적으로 살았다. 어떤 관념이나 주의를 먼저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다기보다 내 앞에 닥친 문제들에 도전했다”고 털어놓았다. 탄핵 돌파 직후의 자신감 때문인지, 솔직하게 생얼(화장하지 않은 얼굴)을 보여 준 셈이다. 아무튼 그의 정치행보는 모순투성이지만 ‘실용적 생존관’이 곳곳에 배어 있다. 치사함도 있지만 동시에 치열함도 느껴진다. 그의 연기(演技)엔 처절미(美)마저 있다.
한나라당 측은 노 대통령의 정신상태를 거론하지만 10년 야당을 하면서도 그만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한나라당에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이 반(反)한나라당 좌파정권 연장을 위한 진군나팔을 불어 대는데도 이명박, 박근혜 두 진영은 도(度)를 넘는 제살뜯기 비방전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 노 대통령의 주된 직무는 국정의 원만한 마무리와 공정한 대선 관리다. 하지만 그는 교과서에 충실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수호하겠다고 선서했던 헌법조차 “그놈의 헌법”이라고 패대기친 그다.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뒤인 2003년 8월 하순 “나는 내 영역에서 제자리를 찾고 내 할 일을 제대로 하겠다. 언론도 제자리를 찾으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임기 내내 비판언론과의 싸움에 매달렸다. 급기야 정부에 대한 취재를 거의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국제언론인협회(IPI) 세계신문협회(WAN) 등 지구촌 언론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한국에 득이 되지 않는 우둔한 짓”이라고 비판하지만 노 대통령은 오히려 한술 더 뜬다. 지난주 연설에서 “임기 중 가장 보람 있는 정책은 언론정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보람이 민생(民生)에 보탬이 됐다는 증거는 없다. 정부에 대한 취재가 막히고 있으니 정권 5년간 1000조 원에 달하는 예산과 공기금 지출의 속사정을 알기도 더 어려워졌다.
이번 대선, 左右건곤일척의 대결
노 대통령은 문제의 연설에서 반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이라는 DJ와의 공동목표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이를 위해 양자는 현란한 정치극(劇)을 펼칠 것이다. 한나라당 주자(후보)를 비롯해 쓰러뜨릴 카드는 끈질기게 저격할 것이고, 깜짝쇼 이상의 연출로 남북 간 평화국면을 가시화하려 할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한나라당 단일후보를 만들어 내려 할 것이다. 결국 대선 판도가 지금의 한나라당 일색에서 크게 달라질 것이다.
좌파정권의 연장을 막으려는 우파의 전략과 결속력이 우세할까, 우파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좌파의 지모(智謀)와 실탄이 위력적일까. 거기서 승부가 갈릴 듯도 하다. 지난주 노무현 사람들의 굿판을 패잔부대의 열패감을 달래기 위한 허무개그쯤으로 볼 것인가.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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