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안맞는 ‘대통령 말씀’…필요에 따라 말바꾸기

  • 입력 2007년 6월 5일 03시 03분




“양당(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실제 노선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연정을 하면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2005년 7월 28일 연정 제안 서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끔찍하다. 무책임한 정당이다.”(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2일 참평포럼 강연에서 이처럼 과거와 180도 달라진 발언을 했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변신’에 대해 “필요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는 기회주의적 태도”라는 비판이 거세다.

▽대연정을 제안해 놓고서?=노 대통령은 참평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이 무책임한 정당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와 흔들기뿐이다”라며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공약, 박근혜 전 대표의 열차페리 공약에 대해서도 각각 “참여할 기업이 없을 것” “타당성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년 전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을 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노선 차이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었다. 이 발언에 열린우리당은 격앙했고 당-청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박 전 대표는 4일 서강대 경제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내가 당 대표로 있을 때 대연정을 주장해 놓고서 너무 앞뒤가 어긋나는 말씀”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보기에 실패한 공약이 만약 (한나라당 집권 후) 실행된다면 우려된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강변했다.

▽박 전 대표에게 입각 제의?=노 대통령은 2005년 9월 당시 박 대표와의 회담에서 “포용정치에서 전형적인 것은 입각을 제의하고 그것을 수락하는 것”이라며 “내가 (박 대표에게) 통일부 장관을 제의한 적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초 박 전 대표에게 통일부 장관 직을 비공식 제의했으나 거부당한 사실을 꺼낸 것.

그런 노 대통령이 참평포럼 특강에선 박 전 대표를 겨냥해 “한국의 지도자가 다시 무슨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외 신문에 나면 곤란하다”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청와대 측은 “강연 당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인신공격성 발언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헌법을 준수한다?=노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라며 대국민 선서를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참평포럼 강연에선 “‘그놈의’ 헌법 때문에 토론을 못하게 됐다”고 막말을 했다.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이 탄핵소추와 행정수도 이전 공약 등으로 위헌 시비에 많이 휘말렸던 점이 헌법 준수 의지를 약화시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실제 노 대통령은 2005년 8월 중앙언론사 논설·해설책임자와의 간담회에서 “지금은 헌법 논리가 좀 과잉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절제하는 가운데 신뢰 구축된다?=노 대통령은 참평포럼 강연에서 “미사일 발사, 핵실험 때 우리 언론, 정치, 국민이 나를 죽사발 만들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절제하는 가운데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에 강경 대응하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포용정책으로 일관해 남북 간 신뢰를 쌓았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정작 같은 나라의 야당에 대해선 절제의 금도를 넘은 막말을 퍼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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