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화면은 아파트광고로 넘쳐난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 없이 유명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파트 분양은 기술력보다 이미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건설재벌들은 앞다퉈 유명연예인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웬만한 여배우치고 아파트광고에 출연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여성모델 기근’ 현상까지 생겨 남성이나 부부 연예인을 기용하는 광도도 늘고 있다.
“마약광고보다 더 나쁜 아파트광고”
그렇다면 유명연예인의 아파트광고 출연이 왜 문제인가. 먼저 김태동 박사가 ‘거액의 개런티를 받는 아파트 분양광고 CF모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며 밝힌 내용을 보자. 김 박사는 최근 ‘부동산 바보들을 향한 두 형제의 쓴 소리’라 불리며 화제를 낳고 있는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의 공동저자다.
“당신들이 하는 아파트광고는 마약광고보다 더 나쁜 겁니다. 소비자들이 광고 메시지에 영향을 받을수록 아파트 값은 적정수준보다 높게 거품이 낄 것입니다. 그만큼 무주택자의 삶을 짓밟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는 것이며, 자라나는 신세대까지 노예화하는 극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약은 본인에게만 피해를 주지만, 아파트광고에 나오는 일은 수십만, 수백만 명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일류탤런트, 일류배우라 생각한다면, 황금과 자신의 명예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자명하지 않을 까요?” (김태동 vs 김헌동,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 궁리, 91쪽)
왜 아파트 광고를 마약 광고보다 더 나쁘다고 했을까? 아마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원가공개도 없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파는 현행 선(先)분양 제도를 겨냥한 것 같다. 건설재벌들은 이를 통해 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고 폭리를 취해왔다. 광고모델이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통렬히 꼬집은 셈이다.
5년째 아파트모델로 활동하는 한 유명연예인은 언론인터뷰에서 “아파트는 도시생활에 가장 적합한 주거공간이지만 국내 아파트 값은 너무 비싸다”고 진단했다. 이 연예인은 또한 “국민소득이나 주거환경, 기반시설, 문화-교육여건 등을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집값에 ‘거품’이 끼어 있다. 제 위치를 찾으려면 지금보다 가격이 절반은 빠져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고 한다.
분양가 ‘거품’형성에 한몫하는 광고
그런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아파트 값에 거품이 끼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거품의 요인이다. 그것은 아파트 선분양가를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건설재벌,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과 언론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연예인의 아파트광고도 엄연히 거품형성에 한 몫 한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둥지가 있고, 하다못해 달팽이도 제 집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바람처럼, 뜬구름처럼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무려 656만8천615가구, 1천666만2천298명이나 된다. TV광고에 넘쳐나는 거품이 잔뜩 낀 ‘선분양 명품 아파트’는 이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물론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대다수 무명연예인과 달리 고소득층이다. 그러니 셋방살이를 떠도는 아픔을 잘 모르거나 옛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또 선분양제도 아래서 건설재벌이 취하는 폭리의 실상을 낱낱이 알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광고가 마약광고보다 더 나쁘다’는 주장이 썩 내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폭등-불로소득’ 먹이사슬의 연결고리 구실을 하는 ‘선분양 아파트’나 ‘분양원가 비공개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는 일 만큼은 진진하게 되짚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건설재벌의 부도덕한 아파트 분양가 부풀리기 때문에 서민의 내집마련 꿈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헤아려 본다면, 아파트값 폭등을 부채질하는 선분양 아파트광고 출연 역시 공인의 도리라 할 수 없다. 광고수입이 연예인의 주요 소득원임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아파트 적정가격을 선도하는 ‘후분양 아파트’ 광고에만 출연하는 양식을 보여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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