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통령, 법 지키시오’ 경고=노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2월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특별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같은 해 3월 3일 선관위는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9조를 위반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은 헌법상의 의무이기도 했지만 노 대통령은 3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언론 보도는 ‘경고’라고 했으나 저는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법 경시 태도는 3월 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의 촉매제가 됐다.
같은 해 5월 14일 헌재는 노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의 행위를 강하게 질타하는 ‘경고 메시지’를 결정문 곳곳에 담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위법행위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면서도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특히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한 행위는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권위는 헌법에 의해 부여하며, 특히 민주정치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 헌법 의식이 확고하지 않은 만큼 헌법을 수호하려는 대통령의 확고한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이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두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해 국민의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을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헌재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이냐에 대해서는 “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지만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발언 당시까지 정당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은 데다 발언이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 형식으로 수동적으로 이뤄진 만큼 선거운동을 향한 능동적, 계획적 요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선관위는 정치적 중립 훼손은 인정하되, 사전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기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참평포럼 발언은 2004년 총선 때보다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 법조계와 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지만 △선거법상 선거운동은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돼 있고 △판례는 ‘선거가 특정됐는지, 후보가 특정됐는지,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등 지극히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2004년 선관위와 헌재 판단에 구애받지 않겠다”=청와대 측은 선관위에 보낸 법리적 의견서에서 “2004년 탄핵사건 때 헌재 결정은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부과한 선거법 9조만을 판단한 것일 뿐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의 지위와 관련된 국가공무원법 규정과 대통령령의 해석을 간과했다”며 2004년 헌재 결정의 ‘법률적 미비점’까지 지적했다.
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에 대통령이 포함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조항과 대통령의 정치인으로서의 지위를 나타내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3조 제3항에서 대통령은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정치활동에 제한이 없다는 조항이 서로 상충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를 분명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
법조계와 학계에선 “마음에 맞지 않는 법은 뜯어고치겠다”는 대통령의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란 지적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 달라는 헌재의 주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승복할 수 없다’는 암시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盧대통령 임명 위원 출장… 8명이 토론
노무현 대통령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선관위원 전체회의를 하루 앞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조영식 사무총장과 이기선 사무차장을 비롯한 간부진은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출근했다.
7일 선관위원 전체회의에 참석하는 김호열 상임선관위원도 경기 과천청사로 출근해 법률 검토 작업을 벌였다. 주무 부서인 법규해석과 직원들은 5일 밤 12시를 넘겨 퇴근한 뒤 6일에도 전원이 새벽에 출근했다.
법규해석과는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연설문 전문, 2004년 5월의 헌법재판소 결정문, 청와대가 보낸 법률검토의견서, 한나라당의 고발장과 법 규정 등 200쪽 분량의 참고자료를 준비했다.
한편 7일 선관위원 전체회의에는 일본 출장 중인 임재경 위원이 출석을 못해 위원 8명이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임명한 임 위원은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출신으로 2004년 탄핵 정국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노 대통령에 대한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선관위는 당초 노 대통령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 안건만 이번 전체회의에 상정하려 했으나 막판에 참평포럼의 사조직 여부도 전체회의에서 함께 다루기로 안건을 추가했다.
선관위원 전체회의는 특정 안건에 대해 합의가 안 될 경우 표결로 결론을 내린다. 찬반 의견이 같을 때에는 위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2004년 3월 노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6시간 반 동안의 회의 끝에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6 대 2로 위반이라고, 사전선거운동 여부에 대해서는 3 대 5로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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