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경근]法비웃는 대통령

  • 입력 2007년 6월 9일 03시 03분


노무현 대통령의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참평포럼)’ 특강은 “대통령은 더는 자신의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2004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유린했다.

참여정부의 전현직 장차관과 대통령비서관 및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이 모인 곳에서 스스로 작성한 연설문을 기초로 4시간여 행한 강연은 얼마 남지 않은 제17대 대통령선거의 물꼬를 바꾸겠다는 반(反)국민주권적 대국민 포고였다.

대선 출마자가 경선에 들어갔거나 후보자를 만들기 위한 합종연횡의 시기에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끔찍하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에 투자하겠느냐, 독재자의 딸(박근혜 전 대표), 대통합과 후보 단일화의 병행 추진 등의 표현이 나왔다.

하나같이 대통령직의 중요성과 자신의 언행이 가진 정치적 파장에 상응하는 절제와 자제를 하지 못한 언사였다. 대통령은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공직선거법 제9조의 중립 의무에도 반한다.

특정 정당의 집권이 부당함을 지적하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훼하는 취지의 발언은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에 속한 단순한 의견 개진의 범위를 벗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7일 결정은 당연하다. 자유선거 원칙을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맞는다.

위원 3인을 임명하는 등의 방식으로 선관위 구성에 관여하는 현직 대통령이 법리적 의견서와는 별개로 의견 진술 기회 부여 요청서를 내는 등 집요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나온 선관위의 이날 결정은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선거운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선거운동 금지 규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본 것은 틀린 판단이다.

단순한 의견 개진과 구별되는 선거운동과 관련해 선관위는 헌법재판소가 1994년에 판시한 당선 내지 득표(또는 반대 후보자의 낙선)에의 목적성, 그 목적성의 객관적 인식 가능성, 능동성 및 계획성을 들었지만 선거운동의 헌법상 개념을 기준으로 하는 통일적 이해 없이 너무 좁게 판단했다. 우리 헌법은 선거공영제와 공정한 선거를 무게 있게 정하고 있다. 즉 사조직성은 넓게 이해해야 한다. 그 기초에서 참평포럼 특강의 선거운동성을 인정하는 것이 옳았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지위가 부여하는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을 이용해 특정 정당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번 결정에 불복해 헌법소원이나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겠다고 한다.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공권력 행사자인 대통령은 기본권을 침해당한 국민만이 청구할 수 있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다. 권한쟁의심판 역시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고 본 헌법재판소가 노 대통령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그 기본 틀을 만드는 항구적 규범인 헌법은 일시적으로 정해진 기간에만 권력을 행사할 뿐인 과객에 불과한 대통령이 함부로 할 만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공익 실현의 의무가 있는 헌법기관이며,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국민 일부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로서 조직된 공동체의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헌법이 인정한 대통령이 헌법을 ‘그놈’이라고 능멸하는 한 한국 입헌주의의 미래는 없다. 노 대통령은 헌법은 정치권력의 그림자가 아니라 권력이 따라야 할 규범임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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