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영욕의 가족사 뒤로하고 첫 여성대통령 꿈 앞으로

  • 입력 2007년 6월 12일 02시 59분


‘퍼스트레이디’ 시절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978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생도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며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978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생도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며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1일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확실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위기의 나라를 구하고 다시 한 번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적을 이뤄 내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이 말에 그의 정치 철학이 모두 녹아 있다”고 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국가 근대화에 앞장선 아버지(고 박정희 전 대통령)와 약자를 돌보는 데 열정을 바친 어머니(고 육영수 여사)의 딸로 DNA에는 애국심이 체화돼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1952년 대구에서 군인 박정희의 2녀 1남 중 장녀로 태어났다.

1961년 소장이던 부친이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2년 뒤인 1963년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당시 9세이던 박 전 대표는 18년간의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수출을 위해 전자사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서강대 전자공학과(70학번)에 입학한 그는 197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해 8월 15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의 저격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당시 22세였던 그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아버지를 보좌하며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하지만 1979년 아버지마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면서 인생의 고비를 맞게 된다. 박 전 대표는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에게서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듣고는 “전방은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청와대를 나온 박 전 대표는 ‘달라진 세상과 민심’에 고심하며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 이사장,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부모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박 전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7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를 지원한 그는 이듬해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2000년에는 한나라당 총재 경선에 출마해 부총재로 당선됐지만 2001년 ‘이회창 대세론’에 맞서 당권·대권 분리 등 당 개혁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박 전 대표는 이 기간 중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기도 했다.

그가 대중 정치스타로 부각된 것은 복당 후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를 맡게 되면서부터.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위기에 처했을 때 전국을 누비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 121석을 얻어 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 전 대표는 요즘 자신의 ‘꿈’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내 꿈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상식과 원칙이 살아 있는 사회,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지 않는 사회, 가졌든 못 가졌든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대통령이 되면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고 퇴임해서는 그런 나라에 살고 싶습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근령씨, 올초 약혼… 지만씨, 결혼뒤 사업 몰두▼

미혼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가족은 동생 두 명뿐이다. 두 동생은 자신의 뒤를 이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근령(53) 씨와 EG정보통신 회장인 지만(49) 씨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잃은 뒤 동생들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다.

1982년 풍산그룹 류찬우 창업주의 장남 류청 씨와 결혼했다가 6개월여 만에 이혼한 근령 씨는 올해 초 14세 연하인 대학교수와 산상(山上) 약혼을 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근령 씨는 당시 통화에서 “박사님(박 전 대표)이 뜻을 이루시고 난 뒤 결혼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에 이어 21세 때 아버지까지 잃은 지만 씨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약에 손을 대 6차례나 처벌을 받았지만 2004년 16세 연하인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한 뒤 건실한 기업가로 생활하고 있다.

평소 지만 씨를 아껴 온 박 전 대표는 그의 결혼식 즈음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생이 결혼한다고 하니 지난날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난다”며 “동생과 아주 잘 어울리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지만 씨의 아들인 세현(2) 군을 ‘보물 1호’라고 말할 정도로 조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소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5월 11일자 A6면에 보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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