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발단에는 흔히 유혈의 참극이 있다. 한국의 허무주의 혁명은 광주의 대학살로 시작된다. 휴전선을 지키는 장병까지 불러들여 호국의 간성인 국군이 국토에서 국민을 대량 살육한 끝에 권력을 장악해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물러나는 4성 장군마다 수천억 원씩을 챙겨 나온 1980년대의 신군부.
그걸 목도한 386의 젊은 세대가 ‘국가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이 386세대의 ‘민주화 혁명’도 어떤 면에선 또 다른 허무주의 혁명으로 둔갑하고 만다. 신군부라는 수유(須臾)의 남쪽 소독재자를 기피하고 북의 붉은 세습 왕조라는 영구(지향)적 대독재자에게 달려간 주사파가 민주화를 주도했다 하니….
대통령의 현대사 부정 ‘충격’
한편 “우리 둘은 민주화 투쟁에서만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영원한 동지”라고 국민 앞에 맹세한 양 김(金) 씨는 국민이 쟁취해 준 대통령 직선의 첫 마당에서부터 등을 돌려 정적이 돼서 신군부 정권을 연장해 준다. 양 김 씨는 차례로 청와대에 입성하자 ‘영원한 동지’는 외면하고 그들을 박해하던 신군부의 두목들을 초청해서 ‘전현직의 동료’로 희희낙락 만찬과 환담을 나눴다.
국가가, 국민이, 국군이 온통 허무주의의 탁류 속에 휘말려 버린 때 나라의 체통을 지키겠다고 나선 민주화 투쟁. 그 싸움마저 주사파의 탈선과 양 김 씨의 반목으로 허무한 싸움이 되고 만 것이다.
마침내 ‘참여정부’의 출현. 노무현 대통령은 세기말 세기 초 한국의 허무주의 혁명을 완성하는 풍운아로 등장한 듯싶다. 그가 청와대에 입성할 때 마련해 온 혁명의 ‘그랜드 디자인’에는 안 들어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아직은 다 완수되진 않았어도 대부분 이미 시도되곤 있다.
가장 충격적인 출발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부정이다. 제 나라의 역사와 현대사를 폄훼한다는 것은 누군가 ‘사견’으로 발설해도 놀랄 일이다. 그런 ‘신성모독’의 발설을 국가 원수로부터 국민이 들어야 한다는 것은 맑은 하늘에 벼락 치는 소리 못지않은 충격이다. 아비로부터 너는 네 어미의 불륜의 소생이라는 말을 듣는 자식의 기막힌 상황과 같다. 노 대통령의 재임 4년간은 크고 작은 이 같은 이벤트로 지고 샌다.
무엇에 반대하는 것인지, 부정의 목표와 대상은 알 것 같으나 무엇을 위한 것인지, 긍정의 목표와 대상은 알 수 없는 허무주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의 봉화는 모든 기성의 권위와 권위주의에 점화됐다.
언론의 권위를 지키려 하는 ‘3대 권위지’는 권위를 부정하는 혁명의 첫 번째이자 가장 꾸준한 타도 대상이 됐다. ‘권위지’에 종사하는 엘리트 언론인도 특히 멀리 해야 할 대상이다. 허무주의 혁명에서는 엘리트라는 존재가 부정돼야 하고 그런 엘리트를 길러 내는 명문 대학도 혁명해야 될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엘리트와 어쩐지 관계가 깊은 듯이 보이는 미국, 미국과의 우방관계며 동맹관계, 그리고 그의 상징이라 할 한미연합사령부도 혁명적 변혁의 리스트에서 빠질 수 없다.
노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볼 때마다 프랑스 대혁명 시대의 풍운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연상되곤 한다. 비단 두 사람의 작은 체구 때문만이 아니라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낱말은 없다”고 한 무소불능의 대단한 자신감의 유사성 때문에….
남은 8개월 불똥 어디로 튈지…
참으로 노 대통령의 사전에는 그가 부정 못하고 폄훼 못하는 어떤 불가능의 대상도 없는 듯싶다. 점잖음? 품위? 말을 삼가고 아끼는(愼言) 몸가짐(修身)? 아니 그런 것보다 도대체 못 해 먹겠다는 대통령 노릇? 그놈의 헌법? 그 따위 선거법? 이명박보다는 좀 나은 노 명박(명예박사)의 학위 따위? 앞으로 남은 임기 8개월, 허무주의 혁명의 불똥이 또 어디로 더 튈지….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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