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金법무 경질 고민중?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개각이 예고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의 경질설이 돌고 있다. 청와대가 김 장관의 최근 ‘언행’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그의 경질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정치권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임명된 지 10개월밖에 안 된 김 장관의 거취 문제는 임기 말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 구상과 맞물린 민감한 사안이다.

▽대선 정국에 상당한 파장=김 장관의 경질은 단순히 장관 한 명의 교체에 그칠 사안이 아니다. 대선을 반년 앞둔 시점인 만큼 공정선거를 총괄하는 법무부 장관을 누가 맡느냐는 대선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의 미온적 업무 태도 등을 문제 삼아 교체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우선으로 후임 장관을 물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럴 경우 대선 정국에서 정부의 선거 중립 의지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노 대통령이 공무원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은 상황에서 김 장관이 경질될 경우 정부의 선거 중립 의지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도 이런 점을 우려해 선뜻 김 장관 경질을 결정하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경질한다고 해도 마땅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법조인은 “현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법무부 장관을 맡으려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한 법조인이 청와대로부터 법무부 장관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고사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게다가 김 장관 교체설이 돌면서 검찰 조직이 술렁이고 있다.

2005년 10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수사 때 청와대가 대검찰청에 ‘불구속’을 주문했으나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이 ‘불복’하자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일을 떠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당시 노 대통령이 김 총장의 ‘옷’을 벗기자 검찰이 반발한 바 있다.

이번에 갑자기 김 장관이 경질될 경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소지도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한 검사장은 “‘위헌’을 ‘합헌’으로 둔갑시키라는 게 청와대의 주문인데, 사슴을 말이 아닌 사슴이라 한 김 장관을 가만두겠느냐”고 우려했다.

▽청와대와의 갈등이 경질설의 진원지?=김 장관은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명시한 선거법 9조에 대해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는 “선거법 9조가 위헌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사안”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이 발언은 청와대를 자극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 대통령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 대통령이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인 제도”(8일)라고까지 반발한 직후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법무부는 그런(반박) 취지가 아니라고 해명했다”고 ‘담담하게’ 넘어갔지만 실제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들끓었다고 한다.

여기엔 일부 언론 보도가 ‘한몫’을 했다. 일부 언론은 사설 등에서 ‘그놈의 헌법’ ‘대통령 5년 단임제 쪽팔린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표현을 재미있게 한 것”이라고 적극 두둔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비교해 김 장관의 답변을 ‘칼로 두부를 자르듯 명쾌한 소신 발언’ 등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청와대가 김 장관을 ‘괘씸’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노 대통령이 올 초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에 시동을 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가 많다. 청와대는 당시 김 장관 등 4개 부처 장관에게 각 부처와 산하기관을 상대로 개헌 설명회를 열도록 하는 등 ‘주무부서’가 될 것을 주문했으나 김 장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제이유 사건과 관련해 검사 출신 대통령사정비서관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검찰의 진술 강요 논란이 도마에 오른 3월 13일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김 장관에게 한 발언에 ‘감정’이 실렸다는 분석도 있다. 노 대통령은 “정권과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은 다 좋지만 합법적으로 하라”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즉각 교체로 이어질까=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13일 김 장관의 경질설에 대해 “현 상황에서 논의 중인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국무위원은 김 장관의 경질설과 관련해 “지금 장관들은 모두 대통령 임기 말까지 함께 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김 장관에 대한 이 같은 청와대의 불만이 쌓이면서 갈등이 ‘단순 봉합’으로 수습될 단계를 넘어섰다는 관측이 꽤 많다. 김 장관 경질설에 힘이 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14일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열릴 예정인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가 김 장관 거취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이 주재하는 이 회의엔 김 장관이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 장관이 ‘문제성’ 발언을 한 직후인 12일 국무회의는 노 대통령 대신 한 총리가 주재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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