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M&A 방지법’ 오늘 심의…재계-정부 날 선 대립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1분


외국 자본이 주요 국가 기간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을 제한하는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의 도입을 두고 재계와 정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엑슨-플로리오법은 미국에서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해(危害) 여부를 판단해 외국 자본의 자국 내 기업 투자를 막을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한국에서는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상경 의원이 각각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15일 산업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법안을 심의한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적극 찬성하고 있지만 산업자원부 등 5개 정부부처는 지난달 10일 회의를 열고 반대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 재계 “철강 등 기간산업 보호해야”

국회에 제출된 이들 법안은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에 대해 정부가 사전 심사 및 승인을 하고, 이에 따라 정부가 투자 철회 명령까지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지분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경영권에 위협을 받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이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노동계, 학계, 법조계까지 가세해 철강 정유 등 국가 기간산업의 보호를 위한 입법을 촉구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외국인 지분이 국내 최대주주의 지분보다 많은 기업은 삼성전자, 포스코, 국민은행, 신한금융, SK텔레콤 등 17곳에 이른다.

이들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자사주(自社株) 매입이 거의 유일하다는 게 재계의 의견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상장기업의 자사주 취득 금액은 7조3000억 원으로 전년 4조8000억 원보다 51.4% 늘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면서 기술 개발이나 설비 투자에 쓰여야 할 돈이 다른 곳으로 새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 투자자를 국내법 수준으로 보호하게 되면 굵직한 인수합병(M&A) 매물에 투기자본이 유입돼도 막을 도리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 정부 “별도 법 마련 필요 없어”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산자부가 최근 작성한 ‘외국인 투자 규제법안의 부정적 영향 검토’라는 문건에 따르면 이들 법안은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새로운 조치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본자유화 규약에 위배된다.

국가 안보나 공공질서를 저해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는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으로 충분히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이들 법안에 반대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1∼3월) 외국인 직접투자는 15억9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2억900만 달러)보다 27.6%나 줄어들었다.

산자부 관계자는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 제정을 요구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있는 포스코 때문인 것으로 알지만 실제 M&A가 이뤄져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심사를 통해 불허할 수 있어 별도의 법은 필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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