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를 합의한 2·13합의 이행의 복병이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금은 태평양을 오가며 무려 3만여 km를 거치는 것으로 가까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워낙 심하게 꼬였던 문제를 푸는 것이어서 무려 6단계에 이르는 복잡한 송금 절차를 거쳐 문제의 자금은 북측에 건네질 것으로 보인다.
▽BDA은행 자금 송금 절차=BDA은행 북한 자금 송금이 복잡해진 이유는 미국 재무부의 제재조치를 받고 있는 BDA은행이 직접 해외송금을 할 수 없기 때문. 마카오 당국은 이에 따라 현지의 제3금융기관을 통해 송금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전체 송금 경로는 ‘BDA은행→마카오 금융관리국→마카오 대서양은행→미 뉴욕 연방준비은행→러시아 중앙은행→극동상업은행→조선무역은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카오 내 포르투갈계 은행인 대서양은행은 BDA은행을 대신해 전신환(TT)으로 미국에 송금하는 역할을 맡는다.
북한 측은 이에 앞서 유로, 엔, 파운드 등 7개 통화로 예치됐던 금액을 미국 달러화로 환전해 송금 준비를 마무리했다. 또 지난달 중순에는 28만9000홍콩달러(약 3400만 원)를 BDA은행센터에서 현금으로 인출했다. 이는 북한 자금이 아닌 현지 중간대리인의 돈이거나 북측이 실제 인출 여부를 시험한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러시아 극동상업은행 참가 배경=러시아 은행 중 자금 거래 순위가 180위권에 머무는 소규모 금융기관이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는 북한 동결자금 전달에 나선 것은 북한 측의 끈질긴 요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을 쉽게 하자면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이 계좌를 개설한 러시아 대외무역은행(VTB)을 활용하는 게 나아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속셈은 달랐다. 평양에도 지점이 있는 VTB 계좌를 이용하면 효율적이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일이 꼬일 가능성에 대비한 것 같다. 최악의 경우 북한과 가까운 러시아에서 현금을 인출해 직접 국경을 넘겠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 이는 출처가 불분명한 돈의 해외 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러시아의 외환 관련법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결국 북한으로서는 나홋카 북한 총영사관의 자금을 취급해 봤던 극동상업은행 계좌가 믿을 만하다고 판단해 고집했을 법하다. 또 러시아는 북한 자금의 러시아 은행 중계를 통해 대북 영향력을 높이고 6자회담 진행에 역할을 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핵폐기 가는 길 ‘산 넘어 산’▼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는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장애물에 비하면 별게 아닐 수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BDA은행에 묶였던 북한 자금의 송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앞으로 남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들 하나하나가 이행되는 게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BDA은행 문제는 6자회담 2·13합의에 따른 핵 시설 폐쇄 조치의 이행을 두 달 동안 가로막았지만, 폐쇄 다음 단계인 핵 프로그램 신고 및 핵 시설 불능화와 핵 폐기를 달성하기까지는 그보다 더 심각한 장애물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의미다.
▽폐쇄는 쉽게 될까=북한은 14일자금을 ‘BDA은행→마카오 금융관리국→마카오의 대서양은행→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러시아 중앙은행→러시아 극동상업은행의 북한 계좌’로 보내는 송금 절차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이날 북한 자금 2000만 달러 이상이 BDA은행에서 마카오 금융관리국과 대서양은행을 거쳐 뉴욕 연방준비은행으로 송금됐다. 그러나 북한이 핵 시설 폐쇄 조치를 보장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많다.
북한이 BDA은행 자금을 극동상업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송금하거나 다른 국제거래를 시도하다 막힐 경우 “우리가 요구했던 ‘국제금융 체제로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폐쇄 조치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폐쇄의 대가로 한국에서 받게 돼 있는 중유 5만 t을 손에 넣을 때까지 폐쇄 조치 이행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 ▽핵 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의 걸림돌은=핵 프로그램 신고를 위한 논의 과정의 최대 쟁점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등의 장비를 파키스탄 등에서 입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되 이 장비들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신고 대상에 넣지 않으려 할 경우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은 핵 프로그램 신고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대북 테러지정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를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미국은 신고 조치와 핵 시설 불능화가 마무리된 뒤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 및 불능화와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받게 돼 있는 중유 95만 t 상당의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 절차의 단계를 어떻게 나누고, 단계별로 지원을 얼마나 할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북한이 불능화 논의 단계에서 경수로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버틸 경우 비핵화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6자회담의 틀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폐기 완료 전까지는 경수로를 제공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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