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관위 결정 반발… 이상한 논리 치졸한 대응

  • 입력 2007년 6월 20일 0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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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다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 있다. 김경제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중앙선거관 리위원회의 결정) 결과는 ‘대통령의 입을 봉하라’는 것.” “한국의 법치주의가 갈 길은 아직 멀다.”

청와대는 19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선관 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 로했다. 일부 표현에선 선관위에 대한 조소(嘲笑)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 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주장하는 청와대 의 논리는 ‘제 논에 물대기’식의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일일이 발언하기 전에 선관위에 질의하고 답변을 받아서 하겠다”=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제 가 될 발언이 있다면 실제로 선관위에 물어볼 계획”이 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를 포기할 수 없 는 만큼 미리 선관위에 발언의 가이드라인을 따져 묻 겠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이를 청와대가 또 다른 독립 헌법기관 인 선관위에 대해 “알아서 하라”는 으름장을 놓은 것 으로 분석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청와대의 대응은 치졸 한 느낌이 든다”며 “대통령이 자기 행동의 적법성, 위 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면 대통령, 아니 대통령비서실 이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 ‘대선 승리’ 외치는 한나라당 발언은 사전선거운동이 아닌가?”=청와대는 “왜 대통령 발언 만 문제 삼고, 한나라당 발언은 문제 삼지 않느냐”며 선관위의 편파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가 정당의 기능과 선거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은 선거법상 행정 부 수반으로서 선거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할 공직자이지 만 한나라당은 그런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 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을 ‘수구부패세력’이라고 비난해 도 선거법상 문제가 안 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정당은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존 재하는 것인데 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존립 목적 자체 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갈 길은 아직 멀 다?”=청와대는 “법도 법이지만 운용도 답답하다. 아 직 후진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선관위 결정 의 ‘후진성’을 비판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엔 눈 을 감고 선거법의 잣대로만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불리한 법 적용을 무시하는 것이 진 정한 법치주의인지 되물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악법도 법이냐’는 전 형적인 운동권 논리”라며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무 슨 법치주의를 운운하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권력이나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일 이 없다?”=청와대는 선관위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결 정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선거 개입은 있을 수 없 다”는 진정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지극히 ‘편의적인’ 발상이라는 반론이 많다.

노 대통령이 15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나는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한다” “한나라당은 경제를 부도낸 정당”이라고 말한 것은 아무리 개인 의 견이라고 해도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들에게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상희 교수는 “대통령은 선의로 권력 행사를 하지 않 는다고 생각하면서 말할 수 있지만 파장을 생각하면 선 거 개입이라는 ‘추상적 영향’을 미치며 우리 선거법은 이 같은 가능성까지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의 발언은 그 발언의 정치적 영향력을 계산하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변협 “대통령 거듭된 위법 우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진강)는 19일 노무현 대통 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내린 중앙선거관 리위원회의 조치를 환영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법 위반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 드는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변협은 “대통령은 선관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같은 위 반 행위를 반복해 선관위로부터 또다시 경고를 받고서 도 ‘대통령의 입을 봉하는 결정’이라는 식으로 헌법기관 의 결정을 폄훼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 중 립 의무 위반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협은 “대통령의 기본적인 책무는 헌법 수호에 있 고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모든 국정 수행 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선관 위의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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