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9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선관 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 로했다. 일부 표현에선 선관위에 대한 조소(嘲笑)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 하고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주장하는 청와대 의 논리는 ‘제 논에 물대기’식의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일일이 발언하기 전에 선관위에 질의하고 답변을 받아서 하겠다”=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제 가 될 발언이 있다면 실제로 선관위에 물어볼 계획”이 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를 포기할 수 없 는 만큼 미리 선관위에 발언의 가이드라인을 따져 묻 겠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이를 청와대가 또 다른 독립 헌법기관 인 선관위에 대해 “알아서 하라”는 으름장을 놓은 것 으로 분석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청와대의 대응은 치졸 한 느낌이 든다”며 “대통령이 자기 행동의 적법성, 위 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면 대통령, 아니 대통령비서실 이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 ‘대선 승리’ 외치는 한나라당 발언은 사전선거운동이 아닌가?”=청와대는 “왜 대통령 발언 만 문제 삼고, 한나라당 발언은 문제 삼지 않느냐”며 선관위의 편파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가 정당의 기능과 선거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통령은 선거법상 행정 부 수반으로서 선거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할 공직자이지 만 한나라당은 그런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 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을 ‘수구부패세력’이라고 비난해 도 선거법상 문제가 안 되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정당은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존 재하는 것인데 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존립 목적 자체 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갈 길은 아직 멀 다?”=청와대는 “법도 법이지만 운용도 답답하다. 아 직 후진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선관위 결정 의 ‘후진성’을 비판했다.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엔 눈 을 감고 선거법의 잣대로만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에 불리한 법 적용을 무시하는 것이 진 정한 법치주의인지 되물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악법도 법이냐’는 전 형적인 운동권 논리”라며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 무 슨 법치주의를 운운하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권력이나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일 이 없다?”=청와대는 선관위의 선거중립의무 위반 결 정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선거 개입은 있을 수 없 다”는 진정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지극히 ‘편의적인’ 발상이라는 반론이 많다.
노 대통령이 15일자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나는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한다” “한나라당은 경제를 부도낸 정당”이라고 말한 것은 아무리 개인 의 견이라고 해도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들에게 분명한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상희 교수는 “대통령은 선의로 권력 행사를 하지 않 는다고 생각하면서 말할 수 있지만 파장을 생각하면 선 거 개입이라는 ‘추상적 영향’을 미치며 우리 선거법은 이 같은 가능성까지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의 발언은 그 발언의 정치적 영향력을 계산하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변협 “대통령 거듭된 위법 우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진강)는 19일 노무현 대통 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을 내린 중앙선거관 리위원회의 조치를 환영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법 위반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 드는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변협은 “대통령은 선관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같은 위 반 행위를 반복해 선관위로부터 또다시 경고를 받고서 도 ‘대통령의 입을 봉하는 결정’이라는 식으로 헌법기관 의 결정을 폄훼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거듭된 선거 중 립 의무 위반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협은 “대통령의 기본적인 책무는 헌법 수호에 있 고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모든 국정 수행 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선관 위의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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