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주체인 대통령, 청구 적격성 놓고 논란

  • 입력 2007년 6월 21일 03시 01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전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반발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전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판정을 내린 데 대해 청와대가 이번 주 안에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방침을 밝힌 20일 헌법재판소는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 사건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탄핵 사건은 심리 기간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2개월 만에 신속하게 결론을 냈지만, 이번 사건은 다른 사건에 비해 ‘특별대우’를 해야 할 정도의 긴급성은 없다는 것.

헌재 고위 관계자는 이날 “헌법소원이 들어오면 검토해 보겠다”는 원칙론만 밝힌 채 더는 언급을 피했다.

일단 헌법소원이 접수되면 하루 이틀 안에 주심 재판관이 지정되고, 30일 이내에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에서 사전 심사를 하게 된다.

지정재판부는 사전 심사에서 소송 요건이나 적법성 등을 따져 전원재판부로 회부할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청구인이 당사자 적격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본안 심리 없이 바로 ‘각하’ 처리된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공권력의 주체와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어 헌법소원 청구 자격, 즉 당사자 적격성이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로 노 대통령이 자연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인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선관위 결정 내용이 자연인이라기보다는 국가 공권력의 주체로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어서 노 대통령이 헌법소원 청구의 당사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

노 대통령 탄핵사건 주심이었던 주선회 전 헌재 재판관은 “이번 사건은 자연인으로서 대통령의 기본권이 침해당한 게 아니다”며 “국가기관인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낸다는 것은 헌법 소원 제도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확립된 판례”라고 밝혔다.

청구 요건이 갖춰졌다고 판단돼 재판관 9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재판부로 사건이 회부되면 180일 이내에 심리를 끝내도록 돼 있으나, 최종 결론은 12월 대선 이후에 내려질 수도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과거 국가기관 헌소 땐 줄줄이 ‘각하’▼

“국민 기본권 보호할 지위” 청구자격 인정 안해

헌법재판소가 창설된 1988년 이후 대통령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낸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국가기관이 헌법소원을 낸 사례는 종종 있었고 헌재는 국가나 국가기관, 국가조직의 일부나 공법인에 대해선 헌법소원 청구 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내려 왔다.

헌재는 1997년 제주도지사가 행정심판법 일부 조항에 대해 낸 위헌 확인 청구사건에서 “국가나 국가기관 또는 국가조직의 일부나 공법인은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며,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지위에 있을 뿐”이라며 청구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1990년 야당 의원들이 여당의 국회 ‘날치기’ 입법에 대해 입법권 침해를 이유로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헌재는 1995년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또는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는 국가기관이나 그 일부는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정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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