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방북 무엇을 얻었나…北-美 비핵화-수교 해법찾기 잰걸음

  • 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북한과 미국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이번 방북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조기에 이행하고 그에 맞춰 미국이 북-미 관계 정상화 조치를 가속화하는 방안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22일 평양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회의가 매우 구체적이고 내용이 풍부했으며 실질적이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6자회담 2·13합의에 따라 핵 시설 폐쇄 조치와 그 다음 단계인 핵 프로그램 신고 및 핵 시설 불능화 조치를 조기에 이행하겠다는 뜻과 함께 구체적인 일정까지 밝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농축우라늄(HEU) 문제도 진전=힐 차관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힐 차관보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린다”며 방북의 성과가 컸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 시설 불능화를 마무리하고,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핵 폐기 조치에 착수할 경우 그에 맞춰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적성국교역법 적용 종료 조치를 가시화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북한은 이에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특히 핵 프로그램 신고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HEU 생산 의혹을 적극적으로 규명하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고 한다.

힐 차관보는 또 북한 측에 HEU 프로그램 장비인 원심분리기와 고강도 알루미늄관 등을 미국이 구입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며, 북한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북-미 간에 비핵화 논의가 급진전됨에 따라 올여름 이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 참가국 간에 공식, 비공식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북핵 문제의 최종 해법을 모색하는 외교적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무장관 방북, 한미 정상회담 가능성=북한과 미국은 이번 양자회담을 통해 7월 초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개최하고 7월 말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 회담을 여는 방안에 합의했다.

힐 차관보는 회견에서 “6자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면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자회담 참가국들 사이에선 힐 차관보가 예상보다 빨리 방북한 것처럼 라이스 장관도 갑작스럽게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만약 6자 외교장관 회담 일정이 쉽게 잡히지 않으면 라이스 장관이 회담 전에 북한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정부는 북-미 관계의 진전 분위기를 타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미국을 방문해 라이스 장관과 회담하며 북핵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내에선 “송 장관이 라이스 장관과 7월 내 한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편 힐 차관보는 이번 방북 기간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강석주 외무성 제1부부상은 만나지 않았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넌-루거법::

냉전 붕괴로 구소련이 해체될 때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등 분리 독립한 국가가 보유한 핵무기의 해체 과정을 돕기 위해 1992년 만들어졌다. 미국 공화 민주당에서 상원 외교위원회를 대표하던 샘 넌,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이 주도했다. 이 법안에 따라 미 정부는 ‘협력적 위험감소(CTR)’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산 16억 달러를 투입해 핵무기, 핵물질의 불법 유출 방지, 핵과학자의 재취업 교육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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