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6·29선언은 6월 항쟁에 떠밀린 군부 정권의 선택이었던 데다 5, 6공화국의 정통성 문제까지 겹쳐 역사적 의미가 사실상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올해 6·29선언 20주년을 맞아 이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는 “대통령 직선제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시민운동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며 “6·29선언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9일 ‘6·29선언에 대한 역사적 평가’란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하는 김용갑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한나라당 의원은 ‘6·29선언은 국민의 저항에 부닥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 아니냐’란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대통령은 계엄령, 친위 쿠데타 등 비극으로 끝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국민의 요구를 정책적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냐?”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가 발표한 선언문의 자구를 다듬었던 이병기(당시 민정당 총재보좌역) 전 국가안전기획부 차장은 “비자금 사건 등 5, 6공의 도덕성 문제와 양김(兩金·김영삼 김대중) 씨 분열로 인한 정권 교체 실패 등으로 6·29선언의 기념비적 내용이 퇴색됐지만, 국민의 열망인 직선제를 받아들인 태도는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7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이었던 이인영 의원은 “아직도 6·29선언이 정권의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 그들은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6월 항쟁은 군부정권을 역사에 묻었다는 점에서 성공했지만, 6·29선언에 의해 국민적 역동성이 크게 제한 받았다”며 6·29선언이 오히려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 의원도 “6·29선언은 국민이 5공화국으로부터 받아낸 항복 선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근 교수는 “6·29를 항복 선언으로 보기 때문에 현 정권과 정치권이 6·29선언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무시해도 된다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6·29선언이 ‘강요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민의에 순응한 ‘현명한 선택’이었다”며 “모든 문제를 민주적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정치 협약’의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6월 민주항쟁이 정치체제의 전환을 불렀다면, 6·29선언은 제도적으로 입법화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한 묶음으로 소중하다”며 “당시 국민과 정권의 상호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현 정권과 정치권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6·29선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미완(未完)이다. 아니, 본격적인 평가 작업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20년이 지난 만큼 대한민국 헌정사에 한 획을 그은 6·29선언의 공과(功過)를 꼼꼼하게 따져 보고,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착수할 때가 됐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별로 없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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