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선택기준 제시’ 공언, 여권 후보에도 적용하나

  • 입력 2007년 7월 9일 02시 59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8일부터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련된 고소 고발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사 현관을 나서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8일부터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련된 고소 고발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사 현관을 나서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중앙지검이 8일 사실상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련된 고소 및 수사의뢰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지만 곳곳에 암초가 많다. 이미 세월이 많이 흘러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자금 추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도 있고, 검찰이 한 차례 수사를 벌여 종결 처리한 사안도 있다. 검찰은 한나라당 경선일인 8월 19일 이전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여러 가지 장애물 때문에 자칫하면 스스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형평성 논란=검찰은 한나라당 경선일인 8월 19일 이전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야당의 경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부터 검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검찰이 수사 착수를 발표하면서 ‘국민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 당장 범여권은 후보가 난립한 상황에서 유력 주자가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이다.

야권 후보에 대해서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야권의 반발 등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경선 과정에서 비슷한 시비가 벌어졌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여야 후보가 확정된 뒤 각종 의혹 제기와 이에 따른 고소 고발 수사의뢰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검찰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 나중에 범여권의 유력 주자가 부상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달리 후보 간 고소 고발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면 검찰이 나설 수는 없기 때문에 형평 시비는 불가피하다. ▽수사 계속 여부도 논란=검찰 안팎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일인 8월 19일 이전에 수사를 과연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경선이 끝난 뒤에 수사를 계속해야 하는지도 논란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를 계속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검찰이 ‘국민의 선택 기준 제시’를 언급한 것에 비추어 보면 경선이 끝난 뒤 탈락한 후보에 대해선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 경우 검찰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현재로선 확실하지 않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경선 일정과 상관없이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수사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수사를 받는 후보가 12월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검찰이 과연 수사를 계속할 것인지 등 복잡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데, 2개월 여 뒤 취임할 당선자를 검찰이 계속 수사하는 것은 전례로 볼때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 의혹등 ‘특수부 배당’ 고심

5년전 자료 보관 안돼 자금추적 힘들어▼

▽다른 대선주자 사건도 특수부로 가나?=검찰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관련 고소 고발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검찰은 “앞으로도 신속하고 적극적인 실체 규명이 필요한 사건들은 특수부에 배당하겠다”고 밝혔을 뿐 박 전 대표 관련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할지 즉답은 피하고 있다.

현재 특수부에 배당된 3건은 모두 이 전 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이어서 “수사 방향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이 곧바로 박 전 대표 관련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검찰에는 △‘정권 교체를 위한 사이버 국민연대’가 박 전 대표의 정수장학회 재직 시절 공금 횡령 의혹에 대해 고발한 사건 △고 최태민 목사의 육영장학회 관련 의혹 등을 제기한 한나라당 당원 김해호 씨를 박 전 대표가 고소한 사건 등이 접수돼 있다.

검찰의 한 중견 간부는 “검찰이 정치적 오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검찰 본연의 임무인 ‘기소’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특수부에 배당할 수도 없다”며 “검찰이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수사 자체도 곳곳에 암초=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대부분 이 전 시장과 한나라당 측이 “부동산 투기나 주가 조작 등은 이 전 시장과 무관하다”며 상대 후보와 범여권 측 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거나 수사 의뢰한 것이다.

이 전 시장 처남 김재정 씨의 토지 매입 시기는 1982∼1991년, 토지 매도 시기는 1992∼2005년에 집중돼 있다. 통상적으로 금융기관은 거래 수표의 마이크로필름 같은 자금 거래 자료를 5년간 보관하게 돼 있다. 2002년 이전 금융거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차명 재산인지를 판가름할 핵심 자료를 검찰이 확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애로사항 때문인지 수사팀 관계자는 “당장 계좌 추적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2002년 이 전 시장을 서면 조사한 뒤 무혐의 처리한 ‘사기 투자’ 사건의 결과도 검찰이 뒤집을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가 미국으로 도피 중인 데다 미국에서 인신보호 항소심 재판 중이어서 대선 이전에 입국할 가능성이 낮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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