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발언의 선거법 위반 여부를 사전 검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회신을 보내온 것과 관련해 “(앞으로는) 소신껏 판단해서 발언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청와대는 이날 선관위에 보냈던 대통령 발언 관련 질의서 전문을 공개하고 선관위가 답변을 거부한 것은 일관성을 잃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 선관위와 정면충돌하나=청와대는 이날 민정수석실 명의로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에서 노 대통령의 원광대 발언 등 3건을 뭉뚱그려 단호히 권고를 결정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라며 선관위가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민정수석실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이 수백 번이나 참여정부의 정책과 정체성에 대해 비난과 비판을 반복했다”며 “대통령이 단 몇 차례 방어한 것에 대해서는 경고를 하고도 왜 이번엔 청와대의 구체적 질의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느냐”고 따졌다.
민정수석실은 “선관위가 대통령 발언에 대해 모호한 법 규정을 들어 판단을 한 것 자체가 무리였으며 선거법 9조(공무원의 선거 중립)가 처벌 조항이 없는 선언적 규정임에도 불구하고 선관위가 무리하게 해석을 강행한 것은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출해 놓은 것도 있고 추상적이지만 선관위에서 나름대로 내놓은 의견도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이 앞으로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 있어서 다양하게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답변은 법과 관례에 따른 것으로 선관위로서는 이미 판단하고 회신한 내용 외엔 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왜 질의서 공개했나=청와대가 선관위에 질의서를 보낸 지난달 29일은 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과테말라로 출국하기 전날.
청와대는 21일 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헌재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선관위의 판단을 존중하고 준수할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전 시장 측이 경부대운하 보고서 유출에 대해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하자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질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어서 발언의 장소와 계기를 떠나 선관위가 충분히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선관위가 답변을 거부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는 이틀 동안 회의를 거쳐 질의서 자체를 공개하기로 했다.
▽질의서 내용은=청와대는 A4용지 4장 분량의 질의서 모두에서 “기자회견 등의 방법으로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 측의 부당성을 지적하고자 한다”고 밝힌 뒤 예정 발언을 5가지로 정리했다.
질의서는 먼저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 측 인사들이 제기한 청와대 배후 의혹에 대해 발언 전문과 발언 날짜, 발언 장소를 빠짐없이 적시한 뒤 “집권을 하겠다는 공당의 지도자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이처럼 불법 행위를 해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공작정치를 일삼아 왔던 그들의 눈높이로는 공작과 음모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한나라당을 맹비난한 뒤 “한나라당이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공격하는 것 역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되는 만큼 한나라당에도 대통령에게 한 것과 같은 경고를 해 달라”고 했다.
이에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선관위로부터 세 번의 옐로카드를 받고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모르겠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지를 가장한 악의”라며 “또 다른 형태의 선거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장광근 대변인은 “선관위를 상대로 질의하다가 안 되니까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어떻게 이성적인 청와대로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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