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비밀사무소 두고 420여건 조사
“李-朴관련 수천 페이지씩 보고서 만들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58) 씨의 부동산 소유 자료를 열람한 국가정보원 5급 직원 K 씨가 소속된 ‘국정원 태스크포스(TF)팀’을 일선 수사관계자들은 사실상 ‘사직동팀(경찰청 수사국 조사과)’이 부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TF팀을 누가 만들었으며 몇 개나 되고 주로 어떤 일을 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국정원이 어떤 법적 근거로 이 같은 조사를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직동팀 역할 부활=국정원은 13일 해명 자료를 통해 참여정부 출범 이후인 2004년 5월부터 ‘부패척결 TF팀’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밝힌 이 TF팀의 업무는 고위 공직자나 단체장 등의 비리 정보 수집. 이는 2000년 10월 대통령의 사설 수사기관이란 정치적 논란 때문에 폐지된 사직동팀의 고유 업무였다.
직제상 경찰청 수사국 소속이었던 사직동팀은 실제로는 대통령법무비서관(또는 민정수석비서관)의 지휘를 받아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감시하고 조사하는 일을 맡았다.
중앙부처 차관급 이상 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는 물론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의 비리를 적발해 사법처리하도록 지원했다는 이 TF팀의 구체적 활동성과도 사직동팀을 연상시킨다.
실제 경찰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에서 각종 비위 공직자의 정보를 직접 검찰이나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과거 사직동팀처럼 대부분 ‘윗선’을 거쳐서 내려온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국정원은 TF팀의 이름을 ‘부패척결팀’이라고 발표했지만, 발족 당시에는 ‘사정팀’ ‘특명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고 말해 사직동팀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부패척결 TF팀’이라는 명칭은 발표용으로 급조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돈다.
▽누가 만들었나=국정원은 스스로 이 팀의 이름에 ‘TF’를 붙여 일상적인 업무와 구별되는 일을 했음을 시인했다.
특히 TF팀은 발족 당시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사무실을 차려 놓고 은밀하게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이런 별도의 팀을 운영하려면 최소한 국내담당 차장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국정원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2004년 12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을 맡았던 이상업 씨에게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명박 TF팀’이 2005년 3월부터 가동됐고 이 전 차장이 이를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슨 일을 했나=국정원 TF팀은 정부 중앙부처 차관급 공무원 등 고위 공직자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의 비리 의혹 420여 건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TF팀에 소속됐던 5급 직원 K 씨가 지난해 8월 이미 서울시장에서 퇴임한 이 전 시장의 처남 소유 부동산 현황을 조회했던 점으로 미뤄 TF팀이 대선주자 등 정치권 인사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광범위하게 조사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정원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정원이 이 전 시장 본인 및 그의 친인척, 측근은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 각각 상세한 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 측에 대한 조사 결과는 1970, 80년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박 전 대표와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사위 등에 대해 조사한 기록 위주로 정리돼 있다는 것.
한편 법조계에선 이 같은 일반적인 비리 첩보 수집 활동이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법 제3조에선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로 직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어 국가안보와 관련이 없는 비리 정보까지 수집하는 것은 국정원이 직무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란 설명이다.
▽몇 개나 되나=이 전 시장과 관련된 국정원 팀은 3개의 작은 TF팀으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야당 대선주자를 스크린하는 팀이 국정원에 몇 개나 가동됐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이날 “3개의 TF팀에서 올라온 각종 정보는 중간 간부인 K 씨를 거쳐 L 씨에게 보고되는 구조”라며 “이 자료들이 어디로 흘러갔고, 누구의 지시로 이들 팀이 운영됐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직자는 “지금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 전 시장과 관련된 것뿐이지만 박 전 대표와 관련된 TF팀도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국정원 해명에 대해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한 것인지, 그 배후에서 누군가가 지시하고 그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 본인은 물론 주변 인사들에 대해 TF팀을 구성해 조직적인 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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