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국정원 보도자료, 의혹만 키워놨다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8분


국가정보원에 ‘정치공작의 몸통’이라는 주홍글씨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닐 것이다. 김대중 정부 들어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 오랜 낙인을 지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하려는 사람이 없지 않다.

국정원의 대외 창구 중 하나인 보도 자료를 봐도 그런 의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국정원이 상반기(1∼6월) 동안 발표한 35건의 보도 자료 중 94%인 33건이 경제 사범 및 대(對)테러 활동 등을 담고 있다. ‘암호학술논문 공모 실시’ ‘나이지리아 금융사기 주의 당부’ 등이다.

그런 국정원이 이달 들어 잇달아 ‘정치 관련’ 보도 자료를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 사생활 관련 자료를 국정원이 열람 또는 수집했다는 의혹이 터지면서부터다. 이달 들어 낸 8건 중 6건이 이런 내용이다.

8일 이 전 시장 측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2005년 국정원의 ‘이명박 X파일’ 작성 의혹을 제기하자 국정원은 즉각 “사실이 아닐 경우 엄중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13일에는 본보 등이 국정원 직원 K 씨가 이 전 시장 측 부동산 자료를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 소속 직원이 정상적 업무 과정에서 열람했다”며 A4 용지 9장 분량의 보도 자료를 냈다. 15일에는 “목인석심(木人石心)의 자세로 정치중립을 지킬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김만복 원장 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국정원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자료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브리핑’을 연상하게 하는 이례적인 ‘해명 퍼레이드’는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은 13일에서야 ‘이명박 TF’가 아니라 ‘부패척결 TF’라는 조직에서 이 전 시장 관련 자료를 열람했다고 밝혔지만, 일방적인 주장이어서 석명(釋明)이 제대로 됐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정원이 정부 전산망에 접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엇갈린 해명을 내놓을 정도다.

국정원은 이쯤에서 믿을 만한 근거를 토대로 각종 의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한 뒤 대테러 활동 등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국정원이 대선 철을 맞아 ‘보도 자료 정치’를 하려 한다는 의혹을 키울 수도 있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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