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 美 “北 비핵화 수위 맞춰 보상 보따리”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9분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 중인 미국 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운데),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방한 중인 미국 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운데),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한미 양국은 18, 1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재개되는 6차 2단계 6자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수준에 맞춰 정치 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 방한 중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와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비핵화를 하는 수준만큼 정치 안보적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불능화(disablement)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 요구에 대해 ‘행동 없이 보상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

2·13합의에 따르면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와 모든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 단계 기간 중 중유 100만 t 상당의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고 돼 있지만 정치 군사적 보장이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공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합의가 없다.

▽‘행동 없이 보상 없다’=이날 한미 양국이 내놓은 원칙에 대해 통일연구원 이봉조 원장은 “한미 양국은 북한이 향후 추진해야 할 불능화와 미국이 제시할 정치적 당근을 연계함으로써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의 해결 지연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하자는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풀이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도 15일 “북한은 불능화보다는 불능화를 실행함으로써 얻어 낼 수 있는 보상에 더 관심이 많다”며 “북한을 만족시켜 행동에 나서게 할 복안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비핵화의 진전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힐 차관보는 지난달 평양을 방문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만난 뒤 “협상을 빨리 진행해 올해 안에 불능화를 마무리한 뒤 내년까지는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신고 대상에 고농축우라늄(HEU) 포함돼야”=2·13합의에 따라 60일 이내의 행동 원칙을 담은 초기 조치 기간에 다루도록 돼 있는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목록 협의는 BDA은행 문제 해결 지연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불능화를 논의할 2단계 기간 중 핵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문제를 먼저 다뤄야 할 상황이다. 불능화의 대상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북한에 대해 불능화를 하라고 할 수 없기 때문.

영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의미하는 ‘현재 핵’과 1994년 생산된 ‘과거 핵’은 물론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HEU 문제도 이번에는 피해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16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이 HEU와 관련해 어떤 장비를 사들였고, 어디에 뒀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투명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능화 개념 합의가 1차 목표=한미 양국은 ‘핵심 부품을 파괴해 핵시설을 다시 가동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만드는 것’을 불능화의 개념으로 삼고 있다. 핵시설을 복구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도록 하겠다는 것.

반면 북한은 핵연료봉의 교체 통로를 차단하는 등 ‘낮은 단계’의 불능화로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불능화의 수위를 높이며 그때마다 보상을 얻어 내는 ‘살라미 전술’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이번 6자회담의 목표는 6자가 불능화의 정의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갖는 것”이라며 “불능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행동계획을 담은 합의문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힐“어떤 평화체제 논의건 한국 정부가 개입돼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6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직접 관련된 당사국 간에 이뤄지는 것이며 어떤 평화체제 논의든 한국 정부가 개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찬 협의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평화체제를 달성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천 본부장은 만찬에 앞서 “평화체제 논의는 ‘2·13합의’ 이행의 진전을 봐가며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힐 차관보는 6자 외교장관회담 개최 시기에 대해 “늦어도 9월 초 호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에는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영변핵 불능화 ‘장기전’ 예고▼

“뭔가 진전이 있더라도 끝까지 봐야 안다. 북한은 늘 어김없이 우리를 실망시켜 왔으니까….”

올해 초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사석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는 과정인지를 이런 말로 표현했다.

실제로 북핵 6자회담 2·13합의가 이뤄진 직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된 북한 자금 이체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해 초기조치 이행이 2개월 이상 지체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였다.

북한이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을 통보한 14일에도 워싱턴은 크게 환영하는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조작’이라며 부인해 온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체면도 세워 주는 ‘고난도 외교’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5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다음 조치는 북한이 숨겨 온 HEU 프로그램으로 무엇을 했는지 설명을 듣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전날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김명길 공사가 ‘북-미 수교 일정 앞당기기’를 강조한 것과는 큰 온도차가 감지된다.

김 공사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 불능화에 앞서 (북한에 대한) 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우선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15일 “북-미 간 1차 관심사가 이렇게 다름에 따라 향후 협상 과정이 지루한 줄다리기로 이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북한이 요구하는 두 가지 사항은 미국 국내법 개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는 이 문제에 대한 견해가 통일돼 있지 않다.

이 소식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의회가 이라크전쟁 문제로 충돌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이민법 개혁 등 핵심 정책의 처리가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일이 잦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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