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한국 정부…수감자 석방 결정권-물리적 수단 없어

  • 입력 2007년 7월 27일 03시 00분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23일 탈레반이 한국 정부와 직접 협상을 요구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실제로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미국 사이에 끼여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분석이 많다.

납치 사건 발생 이후 탈레반 측이 제시한 요구 조건 가운데 ‘철군’ 요구는 한국군의 연내 철수 계획이 확인되면서 철회됐다. 몸값 요구도 공식적으로는 자취를 감춰 결국 탈레반 수감자 석방만이 공식 요구 조건으로 남았다.

수감자 석방은 전적으로 아프간 정부의 결단에 달린 문제이며 한국 정부는 결정권이 없다. 그렇다고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처럼 탈레반 무장세력을 공격해 물리적 압박을 가할 수도 없다.

현재로서는 이런 아프간 정부를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다.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아프간 정부로서는 탈레반과의 대치 과정에서 미국 동의 없이 협상 조건을 내놓기 힘든 상황이다.

26일 알자지라 방송은 “한국 대표단은 ‘한국 대표가 들어줄 수 있는 요구조건을 제시해 달라’고 탈레반 측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협상단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왜 한국 정부를 공식 협상 상대로 지목했을까.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24일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를 통해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설득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26일 오전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도 “아프간 정부가 납득할 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 인질을 살해했다”며 “한국 정부가 다시 한번 아프간 정부를 압박하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탈레반은 한국을 정식 협상 상대로 테이블에 불러낸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국민의 초조한 마음을 아프간 정부와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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