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동안 피랍 한국인의 석방 협상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전해진 소식은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외신이 인용해 보도하는 아프간 정부 협상단, 가즈니 주 당국자, 경찰 등 현지 관계자의 발언은 일관된 흐름 없이 오락가락했다. 한쪽에서 탈레반 관계자에게 들었다며 협상 진행 과정을 전달하면 탈레반의 다른 인물이 나서 이를 부정하는 식의 혼란이 반복됐다.
이런 혼란상은 탈레반 내부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자체의 지휘 통제력이 느슨한 탓에 내부에서조차 행동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협상 방식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혼란상은 결국 협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인 인질들이 3곳에 분산 수용돼 각기 다른 지휘계통의 지휘를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눈길을 끈다. 알자지라 방송은 26일 “인질들이 다른 그룹들에 의해 억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인질은 3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 그룹은 탈레반 본부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다른 그룹은 다른 단체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25일 한쪽에선 인질을 살해하고 다른 곳에선 인질들을 석방하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도 이렇게 분리된 지휘계통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NHK도 이날 아프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 측은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행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더 나아가 “3그룹이 정부에 대해 각기 다른 요구를 내놓고 있어 교섭이 그만큼 복잡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 주 경찰 총수도 “문제는 탈레반 측에서 단일 방침이 없고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이라면 한국과 아프간 정부 협상단을 괴롭게 하는 대목이다. ‘돈’에 만족하는 온건파와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고집하는 강경파가 각기 다른 요구사항을 내놓는다면 어느 그룹과의 협상에 무게를 맞춰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탈레반 납치 세력의 지휘체계가 분산돼 있다는 분석은 정권을 빼앗긴 뒤 재건된 이른바 ‘신 탈레반’의 조직 성격에서 비롯됐다. 지금의 탈레반을 구성하거나 떠받치는 세력은 파슈툰족 민족주의자, 지역 군벌, 아편 재배업자, 자치 그룹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구심세력이 없는 만큼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프간 정부의 복지부 관계자들이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털어 놓은 고충도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관계자들은 “지역별로 너무 많은 당파가 있고 누구와 협상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정한 지역에 대한 보건 서비스는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댓글 0